고엽제에서 생성되는 다이옥신의 진실

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 [박태균의 식약파일]


   
 
  ▲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최근 한 퇴역 미군병사의 폭로 이후 우리 언론엔 고엽제와 다이옥신이란 전문용어가 연일 등장한다. 대중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엽제라고 하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피해를 입은 베테랑(제대 군인)들이 우선 떠오른다. 20대의 꽃 같은 나이에 파병된 병사들이 60대 노인이 되어서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비극도 없다. 이번 고엽제 폐기 파문은 이들의 상처를 또다시 건드렸을 것 같아 안타깝다. 일반 국민도 오염물질의 해악이 누대(累代)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을 것이다.

고엽제(枯葉劑)는 제초제다. 염소가 주성분인 농약(유기염소계 농약)의 일종이다. 베트남전 당시(1962∼1971년) 미군이 베트남의 밀림에 우거진 나뭇잎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살포한 물질이다. 이 농약을 뿌리면 산림에 우거졌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결국 앙상한 가지만 남아 미군은 숲 속에 숨은 적군을 색출해내기 쉬워졌을 게다. 오렌지색이어서 '황색의 비'(Agent Orange)라고 불렸다.

고엽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생성
수많은 농약들 가운데 고엽제가 '유명세'를 탄 것은 제조 과정에서 발암물질이자 인공합성물질 중 가장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다이옥신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은 고엽제에 일부러 첨가한 물질이 아니라 제조 도중 생긴 불순물(부산물)이다.
엄밀히 말하면 다이옥신은 고엽제에만 함유된 것이 아니다. DDTㆍBHCㆍ디엘드린 등 거의 모든 유기염소계 농약의 제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 '염소+탄소+열'이란 세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다이옥신이 생성된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유기염소계 농약들은 이미 30∼50여년 전에 퇴출됐기 때문이다.

10년 쯤 전 국산 죽염ㆍ구운 소금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돼 '소금 파동'을 겪은 적이 있다. 이 사건도 따지고 보면 소금의 주성분이 염소인데다 열을 가한 소금이어서 다이옥신 생성은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당시 죽염ㆍ구운 소금 업체들이 식약청의 발표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식약청은 소금의 다이옥신 허용기준을 정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겼다. 요즘 마트에서 죽염ㆍ구운 소금은 여전히 판매되고 있으며 이 속에 다이옥신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설령 안다고 해도 허용기준이 없으니 적부(適否) 판정이 불가능하다.

다이옥신 종류 2백10여가지
다이옥신은 한 가지 물질이 아니다. 다이옥신류(類)라고 해야 맞다. 이는 일반인은 물론 기자들도 흔히 잘못 알고 있다. 다이옥신은 독성이 크게 다른 2백10여 가지 다이옥신류의 집합체이다. 다이옥신 검출량 뒤에 TEQ가 붙는 것은 이래서다. TEQ는 다이옥신류 가운데 독성이 가장 큰 것을 1로 보고 , 이보다 독성이 작은 것은 독성의 상대적 크기에 따라 1/10, 1/100 등 가중치를 주어 환산한 뒤 이를 모두 합산한 독성 등가량(等價量)이다. 가령 독성이 가장 큰 것(TCDD)이 2pg(피코그램, 1조분의 1g) 들어 있다면 그대로 2 pg TEQ가 되지만 독성이 TCDD의 1/10000에 불과한 다이옥신류가 2000 pg 검출됐다면 0.2pg TEQ가 된다.

미디어에서 "다이옥신 허용기준의 수십∼수천배'라고 표현하는 것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과도한 불안을 안겨 줄 수 있다. 이 문제는 기자들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의 지방 g당 다이옥신이 200pg TEQ가 검출됐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돼지고기의 다이옥신 허용기준인 지방 g당 2 pg TEQ를 100배 초과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산술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200 pg TEQ를 우리가 극소량으로 알고 있는 ng(나노그램, 10억분의 1g)으로 환산하면 0.2ng TEQ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같은 극소량은 분석화학자들도 자신이 밝힌 검사결과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 경북 칠곡에 있는 캠프캐럴 한미공동조사단이 고엽제 등이 묻혀 있는 물체를 발견하기 위한 지표투과 레이더(GPR) 조사 방법을 2일 캠프캐럴 현장에서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재검사하면 검출 결과가 상당히 달라지기 일쑤다. 다이옥신을 직접 분석한 전문가도 자신하지 못하는 양으로 "다이옥신. 허용기준의 100배 검출"이라고 헤드라인을 뽑는다면 이 기사를 본 독자들의 반응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에선 다이옥신을 ‘미디어과장’으로 거론
미국에선 한때 다이옥신이 대표적인 ‘미디어 과장’(media hype)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일부 독성학자와 분석화학자들이 정부의 연구비를 더 많이 끌어내기 위해 다이옥신을 앞세우고, 다이옥신의 실체를 잘 모르는 기자들을 오도해 다이옥신 공포를 과장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가 시작될 때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로 끝난 'Y2K'의 재판(再版)이란 주장이다. 근거가 없는 얘기가 아니다. 다이옥신이 일부 동물에선 강력한 독성을 나타내지만 사람에선 이렇다 할 독성을 일으킨 사례가 없다. 극단적으로 다이옥신의 해악은 '염소성 여드름'(chloracne) 정도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다이옥신의 독성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해서 누구도 자신있게 사람에 대한 독성의 강도를 언급하기 힘들다. 대중의 두려움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고 독성의 실체를 확실히 알지 못할 때 가중된다.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표한 "우리 국민의 하루 다이옥신 섭취량이 1일 섭취 허용기준(TDI)의 10%에 불과하다"는 것도 주목하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다이옥신의 TDI는 각자의 체중 ㎏당 4pg TEQ로 정해져 있다. 체중이 50㎏인 사람은 하루에 200pg TEQ 이하 섭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TDI는 각자의 체중ㆍ연령, 선호하는 음식 등에 따라 달라지는 총량 기준이어서 규제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TDI 설정 등 총량 기준으론 다이옥신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우리 정부(농식품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는 쇠고기ㆍ돼지고기ㆍ닭고기 등 세 축산물에 대한 개별 다이옥신 허용기준을 설정했다. 그러나 정작 다이옥신 오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어패류는 허용기준이 없다.

식약청이 지난해 6∼11월 국내 다소비식품 2백10건의 다이옥신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삼치ㆍ장어ㆍ갈치ㆍ게ㆍ고등어 등 10가지 어패류가 상위 10위까지를 싹쓸이했다. 이 조사에서 일부 삼치ㆍ게ㆍ참치의 다이옥신 오염량은 돼지고기 허용기준(지방 g당 2pg TEQ)을 10배 이상 초과했다. 생선 등 수산물에 다이옥신 오염이 높은 것은 각종 환경오염물질이 최종적으로 해양에 폐기되기 때문이다. 특히 삼치ㆍ장어 등 기름진 생선에 다이옥신이 많이 든 것은 다이옥신의 지방 친화성(지방에 주로 축적되는 성질)과 관련이 있다.

축산물의 다이옥신 허용기준을 설정한 2008년 당시 식약청ㆍ검역원ㆍ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들은 수산물의 허용기준 설정을 검토했으나 "수산물의 다이옥신 허용기준 설정이 몰고 올 사회적ㆍ경제적 충격을 감안해 (일단 축산물부터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기준을 확대해가자"며 논의를 중단시켰다.



   
 
  ▲ 경북 칠곡에 있는 캠프캐럴 한미공동조사단이 고엽제 등이 묻혀 있는 물체를 발견하기 위한 지하수 채취과정 조사 방법을 2일 캠프캐럴 현장에서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수산물 다이옥신 허용기준 설정해야
우리 국민의 수산물 소비가 많은 만큼 다이옥신과 최근 미국에서 문제되고 있는 수산물의 수은 오염을 함께 고려해 정부가 수산물 섭취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선 다이옥신 오염사고로 정권까지 바뀌는 등 큰 홍역을 치른 뒤 1997년부터 수산물ㆍ사료의 허용기준까지 설정했다.

식약청은 다이옥신 대신 다이옥신과 늘 함께 붙어 다니면서 관리ㆍ검사가 용이한 PCB의 수산물내 허용기준을 최근 규제개혁위원회에 상정한 상태다. 다이옥신은 건당 검사기간이 2주, 검사비용이 150만∼200만원에 달해 수산물 허용기준을 정하더라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식약청의 논리다. 하지만 국민 건강을 고려하면 수산물의 다이옥신 허용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한편 수의과학검역원은 2008년 칠레산 돼지고기에서 다이옥신이 g 지방당 8.2pg TEQ 검출됐다는 이유로 수입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또 올해는 독일에서 생산된 계란ㆍ가금육ㆍ돼지고기ㆍ가축사료에서 다이옥신이 최대 6pg TEQ 검출되자 독일산 돼지고기ㆍ가금제품 등에 대한 수입검역을 잠정 중단시켰다. 올해 식약청 조사에선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다이옥신이 수산물에서 검출됐지만 허용기준이 미설정된 상태여서 어떤 조치도 내려지지 않았다.

한 가지 더 언급한다면 우리 국민의 다이옥신 섭취량이 TDI의 10% 가량이라고 한 식약청의 발표 내용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은 다이옥신을 이보다 훨씬 많이 섭취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전에 나왔기 때문이다.

'네오엔비즈'의 이규태 박사(사장)가 'HERA'(Human and Ecological Risk Assessmnet) 2007년 13권에 발표한 논문(한국민의 생선과 패류를 통한 다이옥신류 노출량)에 따르면 수산물만을 통해서도 한국인은 다이옥신을 TDI의 25% 이상(1일 평균 1.2 pg TEQ) 섭취한다.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해당 논문은 정부의 의뢰를 받아 국민 세금으로 실시된 것이다. 연구결과가 이미 국제적인 학술지엔 발표됐는데도 국내에선 아직 '비밀 문건'으로 분류돼 있다.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