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김건희 7시간 녹취록' 보도가 남긴 언론윤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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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지난 16일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통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7시간 녹취록’ 일부를 방영했다. 김씨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국민의힘 의원들의 MBC 항의방문을 거쳐 결국 법원 판단 끝에 방송이 이뤄지며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다만 김씨 발언의 녹취 과정을 정당한 취재로 볼 수 있는지, 동의없는 녹음 공개를 상쇄할 만큼 공적 필요성이 있었는지 등 언론윤리 측면에서 언론계에 과제를 남긴다.

MBC '스트레이트'는 지난 16일 '김건희 씨는 왜?'를 방영했다. 사진은 MBC 유튜브 채널에 올라간 해당 프로그램 캡처.

‘스트레이트’는 이날 김씨와 이 모 서울의소리 기자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52차례 나눈 통화녹음 일부를 공개했다. MBC는 지난해 7월6일 첫 통화에서 김씨가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 청문회를 치르던 시기 의혹보도를 낸 뉴스타파를 서울의소리가 응징 취재한 것에 고마움을 느껴 차명으로 후원했다는 발언을 전하며 두 사람이 가까워진 계기를 설명했다. 김씨는 이 기자를 캠프에 영입하려 했고, 자신의 사업체에서 30분 강연을 주선한 뒤 강의료 105만원을 지불했다. 당내 경선에서 경쟁 후보를 흠집내는 취재를 부탁하기도 했다. ‘스트레이트’는 타 매체 기자가 취재내용을 MBC에 제보한 이유로 “공익적 차원에서 스트레이트에 제보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가 과거 한 인터넷 매체의 의혹제기에 대해서, 공신력 있는 MBC, KBS 같은 곳에서 하라고 언급했는데 이 기자도 이게 신뢰도를 높이는 길이다 판단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방영 전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씨는 지난 13일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국민의힘 원내대표단은 지난 14일 ‘불공정방송’이라며 MBC에 항의방문을 했다. ‘시민-의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의원’들이 대치하기도 했던 상황은 법원이 지난 14일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현재 수사 중인 사건 △언론사나 사람에 대한 강한 어조의 불만 △정치적 견해와 관련 없는 발언 등을 제외하곤 방송하라는 판단이었다. 대화 녹음이 법 위반이 아니고 MBC가 불법적으로 파일을 취득했다고 볼 수 없으며 내용의 공익적 목적도 인정된다고 봤다.


법원 판단과 별개로 김건희씨 녹취록이 보도에 이르는 과정은 언론윤리 측면에서 여러 고민을 남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17일 SNS에 ‘취재원과 대화의 동의 없는 녹음과 공개는 언제 정당화되는지’ ‘기자와 취재원과 대화는 모든 부분이 공적인지’ ‘기자가 취재하거나 녹음한 자료를 직접 보도하지 않고 타 언론에 통째 제공하는 게 언제 정당화되는지’ ‘기자가 취재원과 관계 형성을 위해 정보제공, 자문, 사적강의를 하는 게 정당화되는지’ ‘기자가 최초 신분을 밝혔으면 이후 사적 정보거래 등을 행하는 상황에서의 행위도 모두 취재란 공적행위인지’ 등을 이번 사태의 언론윤리적 쟁점으로 적시했다.


특히 MBC가 받아 쓴 녹음파일을 정당한 취재결과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애초 취재로 시작됐을 행위는 이후 '반말, 누나 호칭' '자문, 정보제공' 등에서 보듯 거래와 사적관계가 뒤엉켜 취재란 공적 행위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자료를 받아쓴 MBC는 '김씨와 최초 통화 시 이 기자가 기자 신분을 밝혔다'는 근거를 들었을 뿐이다. 동의없는 녹음은 기만·함정 취재에서도 별개 문제다. 심 교수는 지난해 11월 ‘신문과 방송’ 기고에서 “모든 비동의 촬영이나 녹음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취재하려는 사안이 정당한 공적 관심사여야 한다.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공적 관심사라도 그런 방식으로 취재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도 후 정치권·언론의 중론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였음을 감안하면 공적 필요성을 상당히 설득했다고 보기 어렵다. 녹음이 동의 하 이뤄졌다고 볼 수 없는 만큼 기만·위장 취재의 기본과도 거리가 있었다.


뉴스가치 판단과 보도 방식에도 고민을 남긴다. 대선후보 배우자가 언론을 대하는 우려스러운 행태, 캠프운영 관여 정황 등이 나타났지만 나머진 ‘발언 전시’에 그친 탓이다. 이는 여권 인사가 연루된 ‘미투’ 사건에 대한 김씨와 기자 간 대화를 그대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피해자 실명을 언급하며 ‘미투’ 본질을 훼손한 김씨의 발언은 유감스럽지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이를 공표한 상당수 언론사들의 책임으로 남는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17일 SNS에 “대선주자의 부인이 한 말이니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언론은 김건희씨가 정말로 캠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매수 시도라고 볼 수 있는 다른 정황은 없는지, 다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MBC가 녹음파일을 먼저 얻은 의미는 (중략) ‘추가 취재에 활용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를 입수했다’는 것이었다가 아니었을까?”라며 “(그냥 틀 거라면)공영방송에서 보도를 할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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