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때마다 차에 싣고 다닌 딸아이… 자식이 부모 일 이어서 하니 뿌듯해"

[대를 잇는 기자들] ③정철 호남대 홍보실장·정희윤 남도일보 기자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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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니 얼마나 예뻤겠나. 취재할 때마다 아이를 차에 싣고 다닐 정도였다.” 전남매일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등을 지낸 정철 호남대 홍보실장은 첫째 딸, 정희윤 남도일보 기자가 자신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처럼 지역신문의 기자가 됐다는 점에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정 실장은 “지역지가 어려운 상황이니 처우 면에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자식이 부모의 일을 이어서 한다는 뿌듯함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가정적으로나 기자로서도 “100점짜리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기자의 꿈을 키워간 정 기자도 아버지와 차를 타고 함께 취재를 다닌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아버지는 홍길동이 허구의 인물이 아닌 전남 장성 출신의 실존 인물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셨다. 그 과정이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고학년이 될 때까지 이어져 왔는데 주말취재 때 저를 데리고 다니셨다”며 “아버지는 하나에 집중하면 결국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사비를 들여 일본 현지 취재도 다니며 기자의 집념을 보여주셨다. 기자가 돼보니 조금 타협해도 될 걸 아버지는 절대 타협하지 않으셨다. 올바른 기자의 표본을 아버지를 통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기자가 쉽게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집안에 기자는 한명이면 충분하다”며 정 기자의 어머니는 남편을 통해 기자의 고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딸의 기자 준비를 반대했다. 남편의 설득과 딸의 의지로 결국, 정 기자의 어머니는 집안에 기자를 한명 더 받아들여야 했다. 정 기자는 “아버지는 자식 둘 중 한명은 기자가 되길 바라셨기에 두 손 들어 환영하셨다. 뒤돌아봤을 때 후회가 남을 삶을 살지 말고, 손가락질 받지 않는 기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며 “아버지라는 존재가 저한테는 무게로 다가왔다. 아버지 명성에 먹칠이 되지 않을까 모든 행동을 조심했고, 남들이 하나 하면 저는 둘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20년 기자 생활 중 15년을 사회부에서 일했던 아버지를 보며 그의 딸이 생각한 기자의 전형은 사회부 기자였다. 정 기자는 “약자들이 억울해하는 문제와 사회 부조리를 해결해나가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나도 사회부 기자가 돼 남들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면 정 실장은 “아무래도 사회부는 경찰들도 상대해야 하고 사건 현장에도 가야 하는 거친 부서이지 않나. 아빠 입장에선 딸이 문화부, 경제부 같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부서에 들어가 실속을 챙겼으면 했다”며 “그럼에도 본인이 자진해 사회부에 가고 싶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언론계를 떠난 후 대학의 홍보실장, 학내 언론 주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집안에 기자를 상대하는 홍보직과 기자가 자리하면서 재밌는 풍경도 생겨났다. 정 기자는 “아버지와 얘기를 하다 불리해질 땐 ‘아니 홍보실장님 이러시면 곤란하다’고 장난삼아 얘기하면 아버지도 ‘아유 기자님 제가 죄송합니다’라고 응수해주신다”며 “딸이 아버지에게 갑질 아닌 갑질을 할 수 있는, 우리 집만 할 수 있는 역할극”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6년 차 기자가 된 딸의 기사를 챙겨보며 부족한 부분은 정확히 짚어내는 언론계 선배로서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정 실장은 “요즘 기자들이 직장인 화 돼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있다. 고루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기자는 단순한 직장인이 아닌 사회의 목탁”이라며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젊은 기자들이 기자 정신을 항상 가다듬고 초심을 잃지 않는 품격있는 기자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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