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직업 위협하는 AI

[언론 다시보기] 김하영 ROBUTER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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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ROBUTER 편집장

▲김하영 ROBUTER 편집장

1970년대에는 택시 기사 월수입이 10~15만원이었다. 이는 당시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에 버금가는 돈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택시는 중산층의 상징이기도 했다. 택시 자체가 큰 자산이었다. 1976년 처음 나온 ‘포니’는 200만원이었다. 당시 잠실주공 15평 아파트가 400만원이었다. 상당한 직업적 숙련도 필요했다.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했다. 1972년 운전면허 소지자는 60만명으로 전체 인구(3350만명)의 1.8%만이 운전을 할 줄 알았다. 길을 잘 알아야 했고, 기본적인 자동차 정비도 할 수 있어야 했다. 영업력도 필요했다. 언제 어디에 가야 승객이 많은지, 저 멀리 손을 흔드는 승객을 보고 ‘진상’인지 아닌지, 단거리인지 장거리인지 파악하는 눈썰미는 경력이 쌓여야 얻을 수 있었다. 택시 기사가 되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의 숙련 기간이 필요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2018년 기준 운전면허 소지자는 3200만명이다. ‘운전할 줄 안다’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다. 길을 몰라도 상관없다. 지금도 택시운전 자격시험에 ‘지리’ 과목이 있지만, GPS 네비게이터로 못 가는 데가 없다. 요즘 나온 자동차들은 고장도 별로 안 난다. 언제 어디에 승객이 많은지 알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만 바라보고 있으면 된다. 저 멀리 손을 흔드는 승객의 정체를 파악할 필요도 없다. 요즘은 강제 배차가 대세다. 택시 기사에게 요구되는 숙련도가 사실상 ‘0’을 향해 수렴되고 있다. 카카오 택시가 드라이버를 모집하면서 내건 홍보 문구는 다음과 같다.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은 어떠한가. ‘언론 고시’라는 걸 뚫고 들어와 가혹한 3~6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치고, 최소 3년 정도는 다양한 부서들을 섭렵해야 비로소 어디 가서 기자 명함 내밀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면과 전파를 통한 여론 독과점이라는 진입 장벽을 쌓고 있었기에 언론이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인터넷은 언론계에도 빛과 그늘을 동시에 드리웠다. 인터넷은 취재 방식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전화로 기사를 불러주거나 줄을 서서 팩스를 보낼 필요가 없어졌다. 도서관과 자료실 대신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만 두들기면 관련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됐고, 관련 전문가 취재원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손쉬운 일이 됐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과연 어떻게 기자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일이 수월해졌다. 이는 기자라는 직업이 상당한 수준의 고숙련 업종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쉬운 일이 됐기 때문일까. 매체와 기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소셜 미디어 시대가 되자 이른바 ‘인플루언서’라는 이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진입 장벽은 무너졌고 독과점은 해체됐다. 인공지능도 언론 영역을 파고들고 있다. 증시 현황 정도는 인공지능이 써내고, 최근에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도 인공지능이 편집한다. 아직은 사람이 편집하는 하이라이트가 더 낫지만, 데이터가 쌓일수록 인공지능의 숙련도는 높아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내일’이 아니다. 이미 어제부터 진행돼 왔고 오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기술의 발전은 일자리의 양과 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언론이라는 산업과 기자라는 직업도 부지불식간에 당하고 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홍보 문구에서 ‘누구나’도 빠지게 될 것이다. 언론이, 기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이 절대 파고들지 못할 새로운 숙련의 성을 쌓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나에게 닥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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