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보도와 언론의 기준

[이슈 인사이드 | 법조]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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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는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임 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해 청와대 입장을 반영하도록 한 사실 등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만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 판결이 나왔을 때 임 판사의 결백이 밝혀졌다고 보도한 기사는 없었다. 대부분의 보도는 임 판사의 행위, 즉,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다른 재판부의 재판에 개입한 행위의 부당성에 초점을 맞췄다. ‘동료 판사 봐주기 판결’을 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는 있었어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거나, 범죄도 아닌 일을 언론이 침소봉대했다고 지적하는 의견은 찾기 어려웠다.

무죄 판결이 선고됐는데도 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재판을 보도하는 언론의 기준은 판결을 내리는 법관의 기준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범죄 성립 여부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은 재판 과정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이 보편적 상식이나 윤리 감각에 부합하느냐이다. 판사가 지위를 이용해 다른 재판부의 재판에 개입한 행위는 설사 범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보편적 상식에 비춰볼 때 누구도 정당하다고 옹호할 수 없는 행위다. 언론이 ‘무죄’라는 재판의 결과보다 ‘부당한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어떤 사건들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준이 언론에 요구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대해 기자가 판단하지 말고, 검찰과 변호인의 주장을 공평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직권남용 혐의 피고인으로 재판에 출석하면서 “검찰의 공소사실만 일방적으로 받아쓰지 말고 변호인 반대신문도 충실히 반영해 달라.”라거나 “기계적 균형이라도 맞춰 달라.”라고 기자들에게 요구한 조국 전 장관의 말에서도 이 같은 생각이 엿보인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의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재판만 놓고 봐도 “기계적 균형”을 적절한 재판 보도 방식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최근 유죄가 선고된 유재수 전 부산 부시장을 검찰 수사 이전에 감찰했던 이인걸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은 “감찰 시작 두 달만에 (정권 실세로부터) 구명전화가 들어오고, 실세를 건드린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조국 전 장관의 지시로 감찰이 중단됐음을 밝히면서 다른 특감반원에게 “이 xx 진짜 감찰해야 하는데...”라며 추가 감찰 필요성이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던 사실도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조 전 장관 측은 감찰에 대한 직무상 권한은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장관에게 있었기 때문에 감찰 중단을 결정한 것이 직권을 남용해 특감반원들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재수 씨가 조사에 불응한 이후에는 강제수사 권한이 없는 특감반의 특성을 고려해 감찰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도 말했다.

재판에 개입한 임성근 부장판사의 무죄 주장이 법리적 관점에서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듯이, 조국 전 장관 측 주장 역시 재판 과정에서 제기해볼만한 것이다. 하지만 무죄 선고가 재판개입의 부당함을 덮어버릴 수 없었듯이 법리적 주장이 있었다고 해서 정권 실세들이 잇달아 구명을 요청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감찰을 민정수석이 중단시켰다는 사실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불과 몇 년 전에 조국 전 장관과 같은 자리에 있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안종범 경제수석의 K스포츠 재단 운영 개입 의혹에 대한 감찰을 중단시켰다고 가정해보자. 이에 대해 우 전 수석이 ‘감찰 중단 여부는 민정수석의 직무상 권한이기 때문에 직권을 남용해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이라 볼 수 없고, 안종범이 조사에 응하지 않아 감찰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한다면, 언론이 감찰 중단 사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이 경우에도 우 전 수석의 주장을 “기계적 균형이라도 맞춰서” 보도해야 하는 것인가?

언론이 유죄와 무죄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대해 보편적 상식과 윤리에 입각해 평가하고 보도할 책임은 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 등을 보도할 때 여전히 많은 기자들이 “기계적 균형”에 머물지 않고 있는 이유다. 지금 정말 필요한 재판 보도의 윤리는 당연한 원칙을 특정 사건 재판에 대한 기사를 쓸 때도 관철할 수 있는 일관성과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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