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지망생에게 여름 일자리가 없어지면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언시생. 이 세 글자를 읽고 바로 ‘언론 고시생’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실 것이다. 몇 년씩 준비해야만 언론사에 입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도 아마도 십수 년째. 학교생활 잘하고 글 좀 쓰면 이른바 ‘기자 양반’ 소리 들을 수 있었다던 옛이야기는 판타지 소설 같이 들린다. 기삿거리 얻으려 공무원과 점심 화투를 쳐가면서 친분을 쌓았다느니, 속보를 전하려고 공중전화 박스에 앞다퉈 달려갔다더니 하는 수습기자 혹은 견습기자의 이야기는 무용담이기만 했을까. 개인적으로 기자가 되는 길에 관해선 지금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최근 핀란드의 여름 일자리 소식이 흥미로웠다.


코로나19로 사회 활동 대부분이 멈춰있거나 느려진 지금, 핀란드 언론계에선 여름 일자리가 화두다. 지역 언론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여름 임시직원 채용을 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사실상 불황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기존 직원들조차 해고되는 처지에 새로운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는 매해 2월이나 3월쯤 ‘썸머 잡’ 공고가 뜨고 청소년과 젊은 세대는 여름 노동 계획을 잡을 수 있었다. 이 기간은 직장인들이 여름 휴가를 가는 기간이기도 해서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실제 직업 현장을 경험할 소중한 기회다. 하지만 올해는 전염병 여파로 상황이 달랐다. 공고가 많이 뜨지도 않았고, 사진 촬영이나 취재 기회도 급격히 줄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나 파티가 예전처럼 쉽지 않고, 비용을 지급하며 여름 인턴을 고용할 만큼 광고 수익 전망이 좋지도 않다.


공채 시험이 대다수 언론사 취재진 채용의 중심인 국내와 달리, 핀란드에서는 학생 기자-프리랜서-소규모 지역 언론-대도시 중앙 언론 등 실무 경험을 쌓아가면서 고용 안정성을 높여가는 형태로 기자 채용이 이뤄진다. 언론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여름철 단기 계약직 경험을 통해 실전을 익히고, 이때 만난 업계 인맥을 바탕으로 프리랜서로 전문성을 쌓는다. 대다수 기자가 이렇게 독립적인 지위에서 시작하다 보니, 개개인의 권리와 역할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 현황 속에서 새로운 인력을 어떻게 지속해서 양성할지에 대한 고민을 미디어 업계 전체가 함께하는 배경이다. 저널리즘이 사회에 필요하다면, 저널리즘을 이어갈 전문성 갖춘 언론인도 계속 필요하다는 관점은 그리 새롭지 않은 기본원칙이다.


핀란드 언론노조(UJF)에서는 해고 혹은 임시 고용 중단에 따른 대응방안 및 지원금 청구 요령을 회원들에게 안내했다. 한국보다 고용 보험 체계가 생계를 어느 정도는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보면 코로나19로 미디어 업계가 고용 문제로 큰 고민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규모에 따른 행사 취소 기준과 그 기간은?’ ‘취재 중 코로나에 감염되었을 때 어떤 근거로 휴가를 쓸 수 있나?’ ‘계약직 기자는 어떤 법적 근거로 고용 중단될 수 있는가?’ ‘계약 형태에 따른 고용 중단의 의미는 어떻게 다른가?’ ‘이때 당신의 권리는?’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긴급 생활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어디고 그 방법은?’ 단기 고용직 외에 독립 언론인 또한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런 정보가 무척 중요하게 느껴졌다.


국내 언론계는 안심해도 될까. 기자 지망생뿐만 아니라 실은 ‘기자 양반’들에게도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수천만원씩 혹은 억대 연봉을 받아가면서 그만큼의 역할을 사회를 위해서 하고 있는지, 그 정도의 공적 책임감을 언론계가 공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만이 노동의 본질은 아닐 터, 개인을 위해서라도 그 기준은 똑같이 적용해봐야 한다. 받는 돈만큼의 밥값, 아니면 가성비라도 내세울 수 있는 직업 생활을 하는지. 새로운 인력을 계속 끌어들일 만큼 업계 차원의 공동 노력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여름 일자리도 공채 시험도 점점 사라져 가는 이 계절에 수많은 기자 지망생 또 언시생은 무슨 희망으로 지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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