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일 만에 나온 채널A 보고서… '검찰 유착 의혹' 미제로 남아

채널A, 취재윤리 위반 인정… 검찰 유착 의혹엔 "관련 근거 확인할 수 없다"
녹음파일 조작해 취재에 썼을 가능성과 재녹음 계획 세운점 함께 지적
1차적 게이트키핑 실패 비판… 윗선 개입 여부엔 '상급자 지시 없었다'
재발방지대책으로 '취재윤리 에디터' '익명 취재원 검증 원칙' 등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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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의 유착 및 강압 취재 의혹이 불거진 이후 관련 진상조사를 벌였던 채널A가 55일 만에 진상조사 보고서를 내고 소속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을 인정했다. 다만 검찰과의 유착 의혹은 관련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혀, 일각에선 부실 조사가 낳은 ‘진상 은폐 보고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검찰과 사전 논의 없는 “자발적” 취재
채널A가 지난 25일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부 법조팀에서 서울중앙지검 1진(지검반장)을 맡고 있는 이 모 기자는 지난 2월5일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의 대법원 등기부등본 열람을 시작으로 관련 취재를 시작했다. 이 기자는 조사에서 “법조 취재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얘기가 되는 건이라고 알고 있다”며 “징역 14년 나온 사람이면 돈 준 사람들 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순진한 생각에 취재가 시작됐다”고 진술했다. 검찰과 사전 논의하지 않았으며, “자발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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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자는 후배 기자와 함께 이철 전 VIK 대표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2월6일과 2월10일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양주 아파트를 현장 취재했다. 2월14일부터 3월10일까지는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전 대표에게 5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들엔 ‘수사는 과도하게 이뤄질 것’ ‘이미 6명의 검사가 투입됐다’ ‘가족이 조사를 받게 될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기자는 이와 관련, 대부분 언론에 나온 사실이고 법조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넣어서 쓴 것이며 이철 전 부인도 VIK 대표를 지냈기에 절차상 당연히 수사할 수 있다는 걸 표현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자는 세 번째 편지를 보내고 사흘 뒤인 2월24일 ‘이철 친구’라고 주장한 지모씨와 연락이 닿아, 다음날인 2월25일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이 기자는 이 자리에서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통화녹음을 들려드릴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먼저 말했다. 이 기자는 채널A 조사에서 “‘나 이 정도로 취재가 되는 사람이다’라는 걸 강조할 생각에 던져본 건데, 그것조차 찝찝해 나중에 부정을 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지씨가 취재 협조 거절 의사를 밝히자 3월13일 지씨를 만나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통화라며 녹취록을 읽어주고, 3월22일엔 통화 녹음파일 일부를 들려줬다. 이 기자는 2차 만남(3월13일)에서 읽어준 녹취록은 ‘100% 거짓’이며, 3차 만남(3월22일)서 들려준 통화녹음은 3월20일 검찰 고위 관계자 A와의 통화내용 일부를 들려준 것이라고 내부 조사에서 진술했다.   


이 기자의 취재는 3월22일 김정훈 보도본부장이 MBC의 취재사실을 파악하고 경위를 알아보며 중단됐다.



◇ 취재윤리 위반은 인정, 검찰 유착은 확인 못 해
채널A는 진상조사 결과 이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은 인정했다. 이 전 대표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수사’ ‘가족 수사’ 등을 언급했고,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친분을 강조하며 취재원의 음성을 녹음해 지씨에 들려주는 등 부적절한 취재를 했다고 밝혔다. 또 이 과정에서 녹음파일 또는 녹취록을 조작해 취재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녹음파일 당사자를 감추기 위해 후배 기자를 시켜 녹음파일을 재녹음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지적했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검찰 관계자와 사전에 논의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녹음파일에 나온 검찰 고위 관계자도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채널A는 전모를 알고 있는 내부 관계자가 이 기자뿐임에도 지난 3일과 6일 이 기자가 추가 조사 요청을 거절했고, 녹음파일 당사자에 대한 이 기자의 진술과 보고도 A에서 C 변호사 등으로 계속 바뀌었다고 밝혔다. 또 증거자료 제출 전 이 기자가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각각 초기화, 포맷해 디지털 포렌식으로도 관련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배 모 법조팀장과 홍 모 사회부장도 이 기자와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삭제했다고 전했다.


채널A는 윗선의 개입 여부와 관련해선 상급자가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채널A는 배 팀장과 홍 부장, 김 보도본부장 등 데스크와 경영진을 조사한 결과 이 기자에게 신라젠 취재 착수를 지시한 사실이 없었고, 이 기자의 부적절한 취재 행위를 지씨와의 3차 만남 때까지 인지한 상급자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배 팀장의 경우 취재 과정에 대한 1차적 게이트키핑에 실패했고, 홍 부장 등 상급자도 취재 과정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채널A는 이와 관련,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보고서에 제시했다. 재발 방지 대책으론 △취재윤리에디터 도입 △검찰 출입 제도 개선 TF △익명 취재원 검증 원칙 마련 △채널A 취재 윤리 규칙 신설 및 직무교육 강화 등이 제시됐고 관련자 징계도 예고했다. ‘채널A 성찰 및 혁신위원회’ 구성, ‘공정성·취재윤리 검증 자문회의’ 운영 등 개선 방안도 소개됐다.


◇‘부실 보고서’ 비판…이 기자 측은 “사실 아니다” 반박
일각에선 이번 조사결과를 두고 ‘부실 보고서’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사태 초기 중요한 증거가 될 자료들이 삭제되도록 방치했고, 결과적으로 핵심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방송독립시민행동은 26일 성명을 내고 “의혹만 더 커진 보고서였다”며 “검찰과 해당 기자 간 유착 관계 조사 내용은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증거를 찾아 놓고도 결론인 조사 결과에선 애써 외면하는 인상이 짙다”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같은 날 성명에서 “검언유착 의혹을 시원하게 해소하지 못했다”며 “윗선 개입이 없었다고 발뺌하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했다.


채널A도 보고서에서 조사의 한계를 인정했다. 채널A는 “강제 조사권이 없는 데다 조사위가 확보하지 못한 증거 자료가 상당수여서 검증에 한계가 있었다”며 “검찰 수사 등으로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가 발견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추가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이 기자 측은 상당 부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기자의 변호인은 25일 입장문을 내고 “이 기자가 ‘검찰 고위 관계자’와 본건 취재 과정을 사전·사후에 공모한 사실이 전혀 없고, 지씨에게 들려준 음성 녹음파일은 검찰 고위 관계자가 아니다”고 밝혔다. 또 채널A가 진상 조사 과정에서 이 기자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강압적으로 제출받고 본인 동의 없이 호텔에서 검사를 만나 휴대전화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25일 저녁 열린 채널A 기자 총회에서도 관련 질의가 나왔고, 기자협회 채널A지회도 기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성명서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채널A는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 문제와 검찰과의 유착 의혹을 보도하자 지난 4월1일 김차수 채널A 대표이사를 위원장으로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은 김재호 대표이사 사장을 포함, 사내 관계자 10여명이었으며 이들에게 제출받은 휴대전화와 노트북 및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사원증 태그기록과 취재용 법인카드 내역을 확인해 동선 등을 파악했다. 또 조사 결과의 검증을 위해 강일원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위원장으로 한 ‘취재 진실성·투명성 위원회’를 구성, 세 차례 검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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