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보도, 독자에 공포 전염... 권력에 책임묻는 관습 반복"

언론재단 주최 '코로나19와 한미 언론 합동 화상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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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이 9일 미국 동서센터와 공동으로 '한·미 언론 합동 화상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9일 미국 동서센터와 공동으로 '한·미 언론 합동 화상토론회'를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만큼이나 ‘정보 전염병(인포데믹)’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국가에선 정치인들이 코로나19 음모론에 편승해 사람들의 불안과 증오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의 공적 역할이 더욱 요구되는 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9일 미국 동서센터와 공동으로 한·미 언론 합동 화상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가한 교수 등 연구자들과 언론인들은 양국의 언론 보도를 점검하는 한편 감염 질병 대응을 위한 바람직한 보도 방향을 논의했다. 


발제자로 나선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인포데믹으로 불리는 정보 혼란 시기에 기성 언론이 인포데믹의 백신이 아니라 오히려 인포데믹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사회적 기구로서 미디어는 환경을 감시하고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역기능 역시 갖고 있다. 이번 코로나 보도를 보면 ‘뚫렸다’ ‘창궐’ ‘대혼란’ 같은 단어를 기술하며 독자들에게 공포를 전염시켰고, ‘사재기’ 같은 이기적 선택도 상당 부분 조장했다”며 “행동심리학을 보면 공포를 느낄 때 사람은 판단을 정지하고 행동에 나선다. 언론은 이번 국면에서 공포 이외의 정보를 제공해 더 많은 정보를 찾아나서게끔 보도했다기보다 공포 단계에서 멈추고 각자가 사재기 등의 행동에 나서게끔 보도를 했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언론의 관습적인 부정 편향 보도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와 언론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키워드를 두고 긍정 부정 감성을 분석한 결과 언론의 부정 감성이 소셜보다 더 높았다”며 “부정 감성의 연결 방식 역시 소셜미디어는 ‘조심하다’ ‘무섭다’ 등 방어적인 데 비해 언론은 ‘우려’ ‘피해’ 등 공격적이었다. 특히 소셜미디어는 자기 삶과 상관성이 있는 뉴스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언론은 부정성에 매몰돼 거의 무조건 권력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기사를 생산하는 관습적 경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구정은 경향신문 국제부 선임기자도 이에 동감했다. 구 기자는 “감염자와 사망자와 관련해 숫자 보도가 굉장히 많았는데 물론 중요한 정보이긴 하지만 분석적 접근이 드문 측면이 있었다. 언론이 통계적 분석의 깊이와 질을 높이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며 “정부 대응 문제에서도 정치적 의도에 좌우된 비판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뿐만 아니라 관습적으로 보도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소셜미디어에서 연대나 긍정 메시지가 있은 후에야 언론이 떠밀리듯 반영했는데, 재난보도에서 심리적, 감성적인 영향도 언론이 염두에 둬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김빛이라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기자도 “정부와 커뮤니티가 문제 해결에 다가서고 있는 반면 언론은 비판을 책무로 여기다보니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뉴스가 많았다”며 “이 때문에 오히려 신뢰를 깎아먹지 않았나 생각한다. 감염병 상황에선 차라리 언론인들이 함께 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이소은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뉴스 이용자 조사를 통해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사회적 신뢰를 하락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달 중순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진행한 결과 TV나 인터넷(포털, 언론사 사이트) 매체 이용정도가 높을수록 사회적 신뢰가 하락하는 경향이 컸다”며 “과잉보도에 대한 경계와 더불어 보도 양과 보도횟수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응답 결과를 보면 뉴스 이용자들은 경제 영향 관련 정보나 정치권 동향보다 감염원인 및 전파 경로, 국내 감염자 현황, 의료기관 정보를 언론이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답했고, 위험 인식 고취를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불안 조장을 방지하기 위해 과잉 보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데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는 기자도 있었다. 코로나19를 일선에서 취재하고 있는 박유미 JTBC 정책팀 기자는 “속보경쟁을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다른 언론사와 기사를 차별화하려면 신속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보건복지부에 출입하는 언론사가 88곳이고 기자만 140명이 넘는다. 단체 카카오톡 방에도 180명이 넘는 기자들이 들어와 있고 받는 정보도 대동소이해 신속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이어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어느 시점부턴 확진자 수 자체보다는 의미 등 다른 쪽에 무게를 많이 싣고 있다”며 “아직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 보도해 나가겠다”고 했다.


코로나19가 빠르게 번지고 있는 미국도 우리와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에이미 브리튼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상황과 정보를 검증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매번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오랫동안 리포터로 일했음에도 이런 상황에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기 어렵고, 말 그대로 속보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일하는 흐름도 교란돼 대면 취재도 어렵고 정보 검증도 어렵다. 데이터 품질도 떨어져 어떤 이슈를 탐사해야 할지 식별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알렌 밀러 ‘뉴스 리터러시 프로젝트’ 대표도 “전문가들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검증된 정보가 빠르게 투입되지 않아 무모한 추측들이 번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바이러스의 기원이나 예방과 치유법에 있어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들이 프라이버시나 건강상의 문제로 현장에 가기가 어려워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밀러 대표는 “다만 허위정보가 시민생활에 큰 위해를 가하고 있다. 언론이 신뢰할만한 정보를 생산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책무를 다해야 한다”며 팩트체크와 함께 디지털 상의 정보 검증 기술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슈아 벤튼 하버드대 니먼랩 소장이 9일 열린 '코로나19와 한미 언론 합동 화상토론회'에서 미국 언론사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조슈아 벤튼 하버드대 니먼랩 소장이 9일 열린 '코로나19와 한미 언론 합동 화상토론회'에서 미국 언론사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조슈아 벤튼 하버드대 니먼랩 소장은 미국 언론사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설명하기도 했다. 벤튼 소장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대부분의 언론사 이벤트가 취소됐고 신문 배달도 어려워진 데다 광고 수입이 하락해 신문사들이 재정적 위기를 겪고 있다”며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뉴욕타임스조차 광고 수입이 10% 하락했고 일부 언론사들은 4, 5월 심지어 6월까지 광고 수입의 30~50%가 하락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미디어 대기업 가넷의 경우에도 지난해 8월 14억 달러였던 가치가 오늘 아침 8800만 달러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벤튼 소장은 다만 “정보 수요가 폭증하고 있어 구독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유료 구독 장벽을 낮추거나 없애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학교가 휴교하면서 젊은 독자들이 언론에 접속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위기 상황이지만 잠재적 구독자들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지 않을까, 또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언론의 정보 전달을 중시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바네사 후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기자도 “크로니클 역시 재정적 위기 앞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코로나라는 위기는 언론이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허위 정보가 더 파급력이 높긴 하지만 정부 정책이 부족하다보니 개개인이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미디어를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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