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속 '공감의 객관주의'

[언론 다시보기]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

코로나19와 관련해 퍼지는 허위정보 현상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OO병원 OO 박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나온 최신 논문’ 등 전문가의 권위를 앞세운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말에 일단 믿고 보다가도, 의구심이 생길 때 사실여부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주체는 소식을 전해준 가족, 친지가 아니라 공적 기관이다. 검증을 업의 근본으로 삼는 언론은 그 중심에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언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는 상황이지만, 뉴스 소비자들이 언론에 바라는 것과 언론이 뉴스로 다루는 것 사이에는 메우기 쉽지 않은 간극이 있어 보인다. 뉴스 소비자들은 구체적인 궁금증을 갖고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질문하는데, 언론이 코로나19를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은 그러한 질문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매일의 속보를 전하는 사건 중심 접근법이다.


장기전이 확실한 코로나19 보도에서 뉴스룸의 인력이 소진되는 것만큼이나 뉴스 아이템의 획일화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매일 출입처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료와 숫자는 결코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만을 전달한다고 해서 시민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현재 상황을 판단할 만한 충분한 정보를 얻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애타게 정보를 찾는 시민들 모두가 확진자의 동선을 쫓는 보도를 미친 듯이 클릭하는 것도 아니다.


판에 박힌 보도는 뉴스 소비자의 피로감을 더할 뿐만 아니라 사고를 가둬 놓는다. 미증유의 사태는 사회 각 부문에 아무런 지침도 없는 상태에서 답을 내놓도록 요구하고 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을 수밖에 없지만,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상상하는 방식으로 뉴스 제작의 문법을 바꾸지 않으면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언론학자 마이클 셧슨은 언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객관주의도 계속 변화해 왔다고 말한다. ‘오직 사실만을(nothing but the facts)’ 보도하라는 것이 객관주의 1.0 시대 언론인들의 믿음이었다면, 시민들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언론이 맥락을 제시하고 해설을 강화하는 이야기(story)를 제공해야 한다는 객관주의 2.0으로 보도태도가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셧슨은 이제 ‘공감(empathy)’에 기초한 객관주의 3.0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의사가 과학자인 동시에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는 치유자여야 하는 것처럼, 기자도 사실을 보도하고, 사람들에게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의 삶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의 객관주의는 어떻게 가능할까? 출발점은 기자와 시민들이 서로 대화 상대가 되는 일일 것이다. 최근 발간된 니먼보고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독자에게 보도과정을 설명하라’고 조언했다. 사례로 소개된 오하이오의 지역 방송국 WCPO가 독자들에게 보낸 공개편지 ‘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렇게 많이 보도할까요?’는 언론이 서 있는 자리, 보도의 목적을 겸손하고 담백한 언어로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 기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입니다. 우리도 여기에 삽니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나 이웃들이 아프기를 원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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