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검찰 시점과 불가지론 사이에서

[이슈 인사이드 | 법조]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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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조국 사태’ 이후 한국 저널리즘과 관련된 여러 질문이 공론장에 제기됐다. 그 중에서도 법조 담당 기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을 안긴 문제는 ‘수사 중인 사건 관련 기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도할 것인지’이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등이 주최한 ‘조국 보도를 돌아보다’ 세미나에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전지적 검찰 시점’의 문제를 제기했다. 권석천 논설위원은 피의사실 공표나 보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검찰 취재가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검찰 관점만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전지적 검찰 시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지적 검찰 시점’이 드러나는 관행적 기사 문체를 바꾸고, 피의자 입장을 검찰 입장과 최대한 병렬적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등의 해법도 제시했다.


권 위원의 주장은 피의사실 공표냐 아니냐는 단순한 문제제기를 넘어서, 언론이 고민해야 할 윤리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자 자신도 근거가 부족한 검찰 중심적 관점의 표현을 관행적으로 사용한 적이 분명히 있다. 근거가 부족한 전지적 검찰 시점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지난 정부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어질 때는 보이지 않던 ‘전지적 검찰 시점’에 대한 문제가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 이후에 집중적으로 제기되는 배경에는 의구심이 생긴다. 또한, ‘조국 사태’ 이후에도 최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나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단을 받은 안태근 전 검찰국장 관련 보도에 대해서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두 사람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보다도 훨씬 더 명확한 무죄 판단이 나온 두 사건에 대해서는 조국 전 장관 사건 보도를 비판할 때 적용됐던 것과는 다른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듯한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저널리즘적 불가지론’의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검찰 등이 발표하는 내용은 일방적 주장일 뿐이고, 법원에서 사실 관계를 확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어느 쪽의 입장이 더욱 신빙성이 있는지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적지 않은 사람이 밝힌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라면 대부분 사건 보도는 현실적으로 ‘불가지론’이라는 기준에 어긋나는 비윤리적 보도가 된다. 이런 식이라면 언론은 전 남편 등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고유정씨의 주장도 수사기관의 주장과 5:5로 보도해야 할 것이다. ‘어금니 아빠’ 등 잔인한 살인 피의자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로 보도해야 할 것이다. 언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전적으로 부당한 일일까?


언론은 보도 시점에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를 취재한 뒤,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장의 신빙성을 판단할 책임이 있다. 권석천 위원의 주장처럼 근거 없이 검찰의 말에 무게를 두는 ‘전지적 검찰 시점’은 배격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 결과 확정 이전에는 진실을 누구도 알 수 없다며 가급적 병렬적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적절하지도 않다. 단정을 피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누구의 말에 신빙성을 부여할지에 대한 판단까지 언론이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뉴스 소비자는 (이상적으로는) 언론사의 판단과 관점의 합리성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언론사는 ‘전지적 검찰 시점’과 ‘불가지론’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매일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책임은 누적되어서 언론사의 신뢰도와 영향력으로 귀결될 것이다. 진영논리에 기대서 간편한 선택을 하는 언론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어렵지만 옳은 선택을 한 언론이 결국에는 살아남으리라는 희망을 아직은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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