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보호법, 기술은 보호하는데 사람은?

내달 시행… 각계 "알 권리 침해"
핵심기술 유출 막는 기능 있지만
생명·건강에 대한 정보공개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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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핵심기술 등의 부정한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의 ‘산업기술보호법’이 한 달 후 시행을 앞둔 가운데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생명·건강에 대한 정보조차 공개가 제한되는 법안이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통과된 데 국회, 정부, 언론 모두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이에 대한 후속 대응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다음달 21일 시행을 앞뒀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의 안전보장, 국민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선 안 된다(9조의2).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는 적법한 경로로 취득해도 제공받은 목적 외 사용·공개가 금지된다(14조8). 어길 시 3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고 기업의 징벌적 손해배상, 수사기관의 조사가 따를 수 있다. 법안은 국가핵심기술 등의 부정한 유출 방지라는 이면에 노동자나 국민의 건강·안전에 대한 정보 역시 제한될 소지를 담고 있다.



임자운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반올림 활동가)는 20일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국가핵심기술’만 해도 범위가 크고 정의가 모호한데 (공개가 가능한) 예외조항도 없다. 사고가 터져도 정보를 숨기고 싶은 기업이나 국가기관이 설명하지 않을 근거가 되는 것”이라며 “언론 취재 시 제약이 커질뿐더러 제공받은 정보를 기사화 할 땐 무시무시한 처벌, 수사기관 개입이 가능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검열하게 될 소지도 있다”고 했다.


지적대로 법안은 사회문제의 공론화 과정에서 항상 가장 앞에 서게 되는 언론·기자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당장 개정안 시행으로 가장 영향을 받을, 잘 알려진 사안은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 산재 입증을 위한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소송이다. 법안 시행 시 노동자들은 사업장으로부터 보고서를 받아 어떤 유해환경에 노출돼 왔는지 알아내기가 힘들어진다. 보고서를 받더라도 내부고발이나 기자회견, 토론, 기사화 등을 통한 공론화가 법 위반으로 몰릴 수 있는 만큼 노동자와 언론 모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상시적인 검열 기제가 될 가능성도 크다. 법안은 삼성이란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핵심기술, 산업기술을 보유한 광범위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법 조문에 들어있는 ‘관한’ ‘포함한’ 등 추상적인 표현은 소관부처나 기업·공장 측의 ‘영업비밀’이란 일방적 주장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되고 합법적인 재갈이 될 공산이 크다.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건강 관련 정보를 공개토록 하지만 타법에 비공개로 돼 있을 땐 이를 우선하기에 보호 장치가 되지 못한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국회와 소관처인 산업통산자원부, 언론들로부터 문제제기 하나 받지 않고 통과됐다. 독소조항이 포함된 개정안은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했고 본회의에서 민주당, 정의당 의원 등 총 206명의 찬성표를 받았다. 뒤늦게 독소조항을 파악해 열린 토론회에선 “몰랐다” “국회의 불찰”이란 말이 나왔다. 한일 무역분쟁 때문에 국내 기술을 보호하자는 공감대가 커져 나온 법안 정도로 이해하고 표결했다는 취지였다. 산자부는 법안 통과 당시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을 외국인이 인수·합병할 경우 정부 신고”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시 3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 강화” 등 기술보호 측면만 부각한 보도자료를 냈을 뿐이다.


언론은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데 그쳤다. 해당 자료가 배포된 지난해 8월13일 포털 네이버 검색에는 독소조항 등은 제외된 법안 관련 기사 45건이 확인된다. 지난해 11월 반올림이 소송 과정에서 삼성 측 변호사가 “국가핵심기술을 공개함으로써 촉발된 이 사건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진행된 입법적 조치”라고 개정안을 거론했다며 산업기술보호법의 폐해를 처음으로 공론화하기까지, 이후 현재까지도 개정안은 반올림 관련 기자회견 등을 통해서만 기사화되는 실정이다.


최근 이 사안을 지속보도 중인 전영희 JTBC 기자는 “개정안은 노동자가 산재 입증을 위해 자료를 받았으면 그 목적으로만 써야 한다고 한다. 동료에게 알려주거나 제보하는 걸 막는다. 고 김용균 씨가 돌아가셨을 때 발전소가 촬영이 안되는 시설임에도 생명과 연관됐기에 많은 동료들이 용기를 내 제보 했는데 이게 다 막힐 수 있다는 의미”라며 “기술보호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건강, 생명과 이해충돌하는 과정을 국회가 조화롭게 소화하지 못한 데 문제의식이 크다. 개개인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몰랐다는 데 국민들이 납득할지 모르겠지만 소위원회 등에 기자들이 일상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든다”고 했다.


국회에선 독소조항 일부를 폐지한 법안이 발의되며 후속 조치를 내놨다. 반올림 등 1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에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점 등을 들어 법 시행일에 헌법소원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언론계에선 특별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임 변호사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몰랐다는데 언론이 알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긴 한다. 다만 산자부는 당시 100이 개정됐다면 50에 대해서만 보도자료를 냈는데 실제 법이 바뀐 이유는 결국 나머지 50에 의한 걸로 보이지 않나.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데 문제제기는 필요해 보인다”며 “일부 조항 폐기와 더불어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해 소관부처인 산자부가 하위법령이나 내부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추가로 입법발의가 있어 개정 등 논의 과정이 필요할 거 같다. 기술보호와 알권리 모두 중요한 가치인 만큼 함께 고려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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