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따르면' 기사체, 피의자 해명 끄트머리에 배치"

한국기자협회·한국언론학회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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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학회가 12일 오후 2시30분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발제는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난 담론전쟁의 실상: 언론을 넘어 정치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한국 저널리즘이 ‘전지적 검찰시점’을 넘어서려면>, 임지윤 세명대저널리즘스쿨/단비뉴스 기자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언론의 ‘청년 분노 이용법’> 등이었다. 사회는 심석태 SBS 보도본부장이 맡았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성해 교수, 심석태 본부장, 권석천 위원, 임지윤씨.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학회가 12일 오후 2시30분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발제는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난 담론전쟁의 실상: 언론을 넘어 정치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한국 저널리즘이 ‘전지적 검찰시점’을 넘어서려면>, 임지윤 세명대저널리즘스쿨/단비뉴스 기자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언론의 ‘청년 분노 이용법’> 등이었다. 사회는 심석태 SBS 보도본부장이 맡았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성해 교수, 심석태 본부장, 권석천 위원, 임지윤씨.


올해 ‘조국 사태’에서 기자들은 또다시 ‘기레기’로 불렸다. 그 어느 때보다 진영논리가 복잡하게 뒤엉킨 가운데 관련 보도의 진정성은 의심받았고, 언론과 시민들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언론계 안팎에서도 세대별 시각차가 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할까.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학회가 12일 공동 주최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 세미나에서 기자, 학자, 청년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발제자로 나선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검찰수사 보도 전개 과정에서 언론의 ‘전지적 검찰시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권 위원이 제시한 ‘전지적 검찰시점’은 피의자나 피고인, 참고인 등의 행동은 물론이고 그 동기와 목적까지 검찰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언론 보도를 지적하기 위한 개념이다.

권 위원은 전지적 검찰시점이 언론의 보도 방식과 시스템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먼저 법조 선배 기자들로부터 대물림돼온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등의 표현, ‘알려졌다’, ‘전해졌다’, ‘파악됐다’ 같은 술어, 피의자의 해명은 기사 끄트머리에 배치하는 보도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권 위원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법조 기자들은 검찰이 흘려주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법조에 있는 현장 기자들은 검사들과 접촉할 기회도 쉽게 갖지 못한 채 외곽 취재를 해서 검찰엔 확인하는 데 그칠 때가 많다고 말한다”며 “(관행적인 법조 기사체 탓에) 기자들은 독자적으로 취재한 내용, 조사를 받고 나간 사건 관계인이나 변호인을 통해 취재된 내용에도 ‘검찰에 따르면’을 넣은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권 위원은 “1993년 법조에 첫발을 디뎠을 때 배웠던 기사체가 30년이 다 되도록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빠르고, 편리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라며 “‘검찰에 따르면’ 기사체가 빚는 또 하나의 문제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보도 방식에서 파생되는 전지적 검찰시점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라고 지적했다.

권 위원은 언론의 위계적 조직문화와 함께 ‘일일단위의 사건기사 중심 기사 생산 시스템’ 역시 전지적 검찰시점을 불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에 길들여진 언론의 시야는 하루로 좁혀져 있다. 심층성보다 시의성이 첫 번째 기사 판단 기준이 되고, 깊이 있고 맥락 있는 기사보다 ‘팩트’가 빛나는 단독이 뉴스룸에서 박수 받는다”며 “언론이 전지적 검찰시점에서 벗어나려면 내부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독자적인 취재를 통해 사건을 파헤쳐 ‘검찰이 알리고 싶은 사실’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 위원은 기자들의 일상이 달라지는 것이 곧 ‘언론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자신을 포함한 기성세대 언론인들이 책임 의식을 갖고 시스템을 고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문제가 온전히 현장의 기자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와 같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재래식 시스템과 보도 방식(기사체), 관행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위계적 조직문화에 대해선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톱다운(top-down)의 똑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찬 뉴스룸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권 위원은 당장 한국 언론 특유의 검찰 보도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9가지 보도 원칙을 제시했다. △혐의는 ‘검찰의 주장’일 뿐이다 △진술을 인용 보도하지 않고 직접 당사자를 취재한다 △피의자 입장을 검찰 입장과 최대한 병렬적으로 제시한다 △구시대적인 스케치 기사는 용도 폐기한다 △익명의 취재원과 ‘정보 불확실’ 술어는 원칙적으로 쓰지 않는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한다 △취재 과정을 성실하고 투명하게 설명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지양한다 △재판 단계의 보도 비중을 확대한다 등이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학회가 12일 오후 2시30분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학회가 12일 오후 2시30분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학계 측 발제자인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담론전쟁이 두드러졌던 조국 사태에서 언론은 ‘멍석을 깔아주는 방식’, 즉 일방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사화하면서 정치적 선동에 동참한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젊은 세대를 대표해 자리한 임지윤씨(세명대저널리즘스쿨‧단비뉴스 기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언론의 청년 분노 이용법’이란 주제로 조국 보도에서 드러난 언론의 문제를 짚었다.

임씨는 “청년은 비극적인 순간에서만 주인공이 된다. 청년이 죽거나 기득권에 저항할 때 언론이 주목한다”면서 “언론은 청년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최악의 실업률’, ‘헬조선’, ‘N포세대’ 같은 프레임만 형성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임씨는 “언론이 주목하는 청년은 누구인가. 조국 보도에서 언급된 청년의 목소리는 서울 16개 대학에서 나왔다. 그들이 청년 전체의 여론을 대변할 수 있느냐”며 “언론이 청년 문제에 관심이 있고 그에 따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청년들의 목소리를 진정성 있게 담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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