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목매는 취재 관행

[언론 다시보기] 신수용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신수용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신수용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스페인에 있는 피카소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사물을 세밀하게 묘사한 스케치다. 그림 기법을 완벽히 파괴한 입체파 거장이 되기 전, 피카소는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데생, 소묘 등 기본기를 익혔다. 대부분 미술대학은 신입생에게 스케치를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기본기가 있어야 비로소 ‘그림’이 나온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재난보도가 손가락질 받는 이유도 여기 있다. 재난보도 준칙이나 언론 윤리 같은 기본기를 등한시 한 채 ‘명작’만 꿈꾼다.


재난방송의 패착은 특종, 단독 또는 얘깃거리가 되는 ‘그림’ 찾기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데서 비롯된다. KBS가 독도 헬기 사고 당시 이륙 영상을 '뉴스9' 첫 리포트로 내보낸 것도 ‘그림’ 욕심 때문이었던 듯하다. 세월호와 부다페스트 참사에서도 오열하는 유족을 보여주고, 이들의 사생활을 파고들었다.


강원도에 산불이 났을 때는 한참 동안 예능과 드라마를 계속 방영하는가 하면 진화된 뒤에도 불타는 장면을 반복해 내보냈다. 그림이 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재난보도를 시작한 건 불이 난 지 3시간 뒤였다. 누가 그림을 더 빨리 찾는지를 두고 언론사 간 속보경쟁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오보도 나왔다. KBS는 강릉을 고성이라 보도하고 MBC는 현지 보고가 있었음에도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를 계속 내보냈다. ‘그림’ 찾기 식 보도 행태가 언론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민들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림 그리기와 기사 쓰기 둘 다 ‘몸’으로 익혀서 하는 일이다. 언론사는 재난보도 교육을 철저히 해 구성원들이 재난보도 준칙을 체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습기자 교육은 새로운 현장기사를 발굴하는 ‘그림’ 찾기 훈련이 주를 이룬다. 재난상황에서는 현장을 보여주는 것 말고도 피해를 최소화할 안전에 관한 정보전달이 중요하다. 더욱이 재난은 예측할 수 없다. 기자가 미리 훈련돼 있어야, 급박한 재난상황에서도 실수 없이 차분히 필요한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온두라스 난민’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김경훈 로이터통신 기자는 방사능이 누출되었거나, 총알이 오가는 극한 현장에 뛰어든다. 그가 소속된 언론사는 정기적인 재난 교육을 실시한다. 이를 수료하지 못한 기자는 현장에 갈 수 없다. 여기에는 윤리강령도 포함돼 있다. 이런 기본기를 바탕으로 나온 그의 재난보도는 상만 탄 게 아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멕시코 장벽 설치 정책에 균열을 내고, 난민들의 생존과 자립을 도왔다. 우리 재난보도도 이런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야 국민들을 이롭게 하는 ‘명작’이 될 수 있다.


※ 우리 언론이 ‘예비언론인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요? 이 칼럼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이 번갈아가며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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