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양제(一國兩制)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6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홍콩 시위 사태가 중요한 분수령을 맞았다. 지난달 24일 실시된 구의원 선거에서 반중 시위를 지지해 온 범민주 진영이 친중파를 누르고 압승을 거둔 것이다. 간발의 차로 앞설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전체 452개 의석 가운데 388석을 석권했다. 홍콩 민주주의 역사에 ‘작지만 큰’ 성과로 기록될 일이다.


이번 승리를 작은 성과로 보는 이들은 홍콩 시민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행정장관 직선제 쟁취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홍콩 행정장관은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되는데 투표권을 가진 선거인단의 60% 이상이 중국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친중 인사다. 전체 선거인단 중 10% 미만인 구의원 몫의 투표권이 범민주 진영으로 넘어갔다고 차기 행정장관 선거에서 유리해진 것은 아니다. 중국 중앙정부가 행정장관을 직접선거로 뽑는 방식을 수용할 리도 만무하다.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와는 별개로 홍콩 내 집권 세력 교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큰 성과로 평가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다. 우선 지난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실시된 수많은 선거에서 반중파가 거둔 최초의 승리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지역 일꾼으로 구성된 풀뿌리 의회를 장악한 만큼 향후 홍콩 시민들의 삶의 질 제고에 도움이 될 다양한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 중요한 측면은 중국이 홍콩·마카오를 통제하고 대만을 흡수 통일하려는 의도로 수립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이다. 이번 홍콩의 선거 결과는 일국양제의 덫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1982년 1월11일 덩샤오핑(鄧小平)은 “국가 통일이라는 전제 하에 대륙은 사회주의, 대만은 자본주의를 실행할 수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一個國家, 兩種制度)’를 의미한다”고도 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틀만 유지할 수 있다면 체제는 개의치 않겠다는 일국양제 원칙은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의 정치적 응용이다.


하지만 처음의 약속과 달리 경제 발전에 성공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커진 중국은 일국양제에 대한 거북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마오쩌둥(毛澤東)을 닮고 싶어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를 홍콩 등에 이식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홍콩 행정장관은 초대 둥젠화(董建華)부터 5대 캐리 람(林鄭月娥)까지 모두 친중파 인사가 선출됐다. 홍콩의 줄기찬 요구에 못 이겨 약속한 행정장관 선거 직선제 전환도 시 주석이 집권한 직후인 2014년 번복됐다. 분노한 홍콩 시민들은 그해 9월부터 79일 동안 격렬한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잘 알려진 ‘우산혁명’이다.


대만에서도 일국양제의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대만에서 반중 성향의 정치인이 득세할 때마다 군사적·경제적 견제에 나서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와 대만의 민주주의 체제는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홍콩 시위 사태의 여파로 반중파인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내년 1월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할 것이라는 분석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 이유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일부가 된 홍콩에서 일국양제를 50년간 유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2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중국과 홍콩의 화학적 결합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구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뒤 중국 최대 관영 매체인 신화통신은 “지난 수개월 동안 홍콩을 어지럽힌 폭력배들은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선거 과정을 심각하게 방해했다”며 “폭동을 종식시키고 질서를 회복하는게 홍콩의 가장 시급한 임무”라고 강변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 50주년인 2047년까지 일국양제 원칙은 연명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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