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9시뉴스 메인 앵커로 40대 여성 기자 첫 발탁

['중년남성·젊은여성' 고정관념 혁파]
여성 앵커가 메인 파트, 남성 아나운서가 '서브' 맡아
엄경철 국장 "젠더 진취성 필요"... 방송사 전반으로 이어질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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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9시 뉴스 새 진행자에 ‘여기자’가 발탁됐다. KBS는 엄경철 통합뉴스룸 국장 후임으로 〈뉴스9〉을 진행할 메인 앵커에 ‘40대 여성 기자’를 최종 낙점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KBS 9시 뉴스 앵커를 여성 기자가 맡는 것은 처음이다. KBS는 전통적으로 기자 출신 중년 남성 앵커와 젊은 여성 아나운서의 조합을 고수해왔다. MBC와 SBS가 일찌감치 메인뉴스 앵커에 여기자들을 발탁했던 것과 대조적인 행보였다.


그러나 오는 25일부터 시행 예정인 뉴스 개편에서 KBS는 기존의 남녀 앵커 구도를 완전히 뒤집는다. 여성 앵커가 메인 진행을 맡고, 남성 아나운서가 ‘서브’ 진행을 하는 방식이다. 주말 뉴스 앵커 역시 연령대를 낮췄다. 엄경철 국장은 이날 통화에서 “후임 앵커는 취재 과정, 저널리즘의 윤리와 그 결과에 대해 좀 더 낮은 자세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토리텔링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고민의 결과로 여성이 훨씬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엄 국장은 또한 “젠더 감수성도 고려했다”면서 “공영방송은 젠더 문제에 있어서 사회적 흐름과 같이 가야 하고 젠더 진취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TV 뉴스 앵커의 성별 구도는 방송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이자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아왔다. MBN의 김주하 앵커가 평일 종합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하고, YTN에서도 여성 앵커가 남성 앵커보다 더 ‘선배’인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40~50대 남성 앵커와 20~30대 여성 앵커라는 구도는 오랜 시간 변하지 않았다. 특히 JTBC 〈뉴스룸〉의 손석희-안나경 앵커는 33살 차이가 나고, MBN 주말 종합뉴스의 최일구-정아영 앵커도 27살 차이다. 현재 KBS 9시 뉴스의 남녀 앵커 나이 차이도 18살로 지상파 중 가장 많다.


나이와 경력에서 모두 ‘밀리는’ 여성 앵커들은 남성 앵커의 ‘보조적’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실제 기자협회보가 10월 한 달간 지상파 3사 저녁 메인뉴스를 모니터한 결과 여성 앵커는 남성 앵커보다 언제나 후순위였다. 가장 심한 건 KBS였다. KBS는 항상 남성 앵커가 단독으로 뉴스를 시작하고, 여성 앵커는 평균 9.6번째 리포트가 되어서야 등장했다. 뉴스 시간의 3분의 1 이상이 지난 시점이었다. KBS는 2년 연속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로 지적을 받기도 했다. SBS도 평일 〈8뉴스〉는 항상 남성인 김현우 앵커가 혼자서 오프닝을 맡고, MBC도 10월2일 단 하루를 제외하고 평일 〈뉴스데스크〉 진행은 왕종명 앵커가 단독으로 시작했다. 다만 MBC와 SBS 모두 주말에는 남녀 앵커가 나란히 서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도 첫 멘트는 항상 남성 앵커의 몫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7년 실시한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남녀 앵커가 주로 다루는 뉴스아이템에서도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인권위는 “사회 관련, 생활정보, 날씨 및 해외 뉴스아이템은 여성앵커가 소개하는 비율이 높았고, 정치와 국방 관련 뉴스는 남성 앵커가 소개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며 “여성앵커와 남성앵커 간의 이러한 역할 분담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성비 불균형 문제도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최근 펴낸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월 방송된 지상파·종편·케이블 등 25개 시사·토론 프로그램 출연자 성비는 여성 24%(76명), 남성 76%(240명)로 남성이 여성의 약 3배에 해당했다. 모니터를 진행한 서울 YWCA는 “남성이 과대 대표되었을 때 남성의 시각이 시사를 다루는 보편이 되기 쉬우며, 남성 중심적 주장과 의견이 대표성을 지닌 보편적 의견으로 다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지난 2월 방송통신위원회에 미디어다양성 조사 항목 개선을 주문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인권위는 “방송이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것을 방지하고 양성평등 제고를 위하여 미디어다양성 조사항목에 시사토크 장르를 포함하는 등 조사항목을 확대하고, 등장인물의 성별에 따른 역할분석 등 정성적 평가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도 앞서 지난 1월 발표한 ‘방송프로그램의 양성평등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서 ‘다양성 조사의 상시화와 조사항목 세분화’를 제안하며 “미디어 내용에서는 성별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조직 구성원의 차원에서도 사회적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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