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펑(東風)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올해는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내고 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지 70주년 되는 해다. 1949년 10월1일 오후 3시 천안문 성루에 오른 마오쩌둥(毛澤東)은 30만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신중국 수립을 선포했다. 그때부터 매년 10월1일을 건국 기념일인 국경절로 기리고 있다.


지난 1일 개최된 70번째 국경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 그중에서도 이번에 첫선을 보인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둥펑(東風)-41’에 이목이 집중됐다. 한국 언론이 워낙 반복적으로 언급한 탓에 군사 분야에 조예가 없는 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하다. 이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1만5000km에 달해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닿는다. 특히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라는 수식으로 유명하다.


중국은 자체 개발한 탄도 미사일에 ‘둥펑(DF)’으로 시작하는 시리얼 넘버를 붙인다. 동풍(東風)은 봄바람이다. 만물을 소생케 하는 바람이니 사람에 이로운 것,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함의가 있다.  삼국지 중 적벽대전 때 조조군을 물리치기 위해 화공을 계획한 제갈량이 “모든 것이 준비됐으나 동풍만 없다”며 바람을 부르는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에 이로운 동풍은 정의롭다. 반대로 서풍은 사악함을 뜻한다. 중국에 사회주의가 도입된 이후 동풍에는 혁명과 진보를 추동하는 힘이나 기세라는 의미가 추가됐다.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공산당 대회에 참석한 마오쩌둥은 “내가 보기에 최근 정세의 특징은 동풍이 서풍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東風壓倒西風)”이라고 강조했다. 동서 냉전 시기에 사회주의가 한창 기세를 올릴 때였다. 1960년대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중국이 동풍이라는 명칭을 선택한 이유다.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기력을 소진한 소련이 몰락하고 중국이 눈부신 경제 발전을 토대로 세계 주요 2개국(G2) 지위에 올라서는 과정에서 ‘동풍이 서풍을 압도한다’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슬로건이 됐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16기의 둥펑-41을 가장 마지막에 등장시키며 최초 공개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CCTV 등 중국 관영 매체는 열병식에서 선보인 첨단 무기들을 일컬어 ‘나라를 지키는 귀중한 보물’이라며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었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40년 만에 양국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미국을 자극할 만한 무기를 공개한 배경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핵전쟁 수행 능력을 비롯한 군사적 역량을 과시하며 미국을 향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70년 전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천안문 성루에 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은 더욱 직접적이었다. 그는 “중국은 근대 이후 100여년간 누적된 가난과 쇠약함, 업신여김을 당하던 비참한 운명을 철저하게 변화시켰다”며 “어떤 힘도 중국의 지위를 흔들 수 없고 중화민족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건국 7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고 싶었던 중국 수뇌부 입장에서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시위 사태 등 내우외환에 둘러싸인 현 상황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홍콩 시위대가 시 주석의 초상화를 짓밟고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에서 일종의 분노마저 치솟을지 모르겠다. 시 주석의 연설을 통해 확인된 것은 중국의 정면 돌파 의지다. 중국의 양보로 귀결될 줄 알았던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이 안갯속으로 빠져 들고,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할 정도로 진압 강도가 높아지는 것도 이 같은 의지가 투영된 것이다.


마오쩌둥은 생전에 ‘국제 관계를 처리하는 준칙’을 발표하며 “동풍이 서풍을 제압하지 못하면, 서풍이 동풍을 압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두 세력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의미다. 각자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넘어 패권전쟁을 벌이게 될 것을 예견한 걸까. 마오쩌둥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오늘날 사회주의 중국은 세계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고 화답한 시 주석을 지근에서 지켜보며 엄습하는 불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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