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취지 역행' 증권사 발행어음 실태

[제346회 이달의 기자상] 이상무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 / 경제보도부문

증권업계, 이제는 영역이 넓어져 금융투자업계라고 불리는 곳에서 취재는 무엇일까요. 금융투자업계 출입 기자는 돈을 따라 움직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하는지, 투자된 돈을 기업이나 증권사는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는지, 수익이나 손해가 났는지 묻습니다. 기자에게 금융투자업계 ‘선수’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투자된 돈에 꼬리표가 달려 있나?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거지. 아무도 어떻게 하라고 할 수 없다. 정해진 원칙도 규칙도 없다. 그때그때 다르다. 그걸 왜 따져 묻느냐?” 꼬리표는 과거 화물을 부칠 때 보내는 사람과 받을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물건에 달아매는 것인데, 금융투자업계에서 돌고 도는 돈에는 목적지 즉,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돈에 꼬리표가 달려있다’를 전제로 한 취재는 아무리 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는 ‘꼬리표가 달린 돈’이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이라는 금융투자상품으로 끌어들인 돈 ‘9조원’이 대표적입니다. 정부가 스타트업,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모험자본’ 역할을 하라고 증권사에 준 혜택입니다. 모험자본이 꼬리표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꼬리표 하나 들고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은 모험자본으로 사용되고 있냐?”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증권사, 금융감독원, 국회를 거쳐 질문에 대한 답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꼬리표는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스타트업·벤처기업에 투자된 돈은 ‘0원’이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규모가 커지면서 꼬리표 달린 돈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돈에는 꼬리표가 달려있지 않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직 기자가 할 일이 많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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