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쪽방 실소유자, 건물주·부유층이 다수"

[기획의 힘 보여준 기자들] '쪽방촌 등기 전수조사'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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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이라는 게 결코 새로운 소재는 아니에요. 유력 정치인의 행보나 한파나 폭염 스케치 풍경으로 자주 등장했죠. 이런 접근방식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빈곤 비즈니스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이혜미<사진> 한국일보 기자는 <지옥고 아래 쪽방>(쪽방) 기획으로 쪽방촌의 빈곤 비즈니스 생태계를 세상에 드러냈다. 지난 7일 <쪽방촌 뒤엔… 큰손 건물주의 ‘빈곤 비즈니스’> 등 3개의 시리즈로 이뤄진 쪽방 기획은 쪽방 생태계 공공의 무관심과 제도적 미비함, 쪽방 속 사람들을 겨냥한 착취의 결과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냈다.


지난해 11월 당시 경찰팀이었던 이 기자는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 이후 종로구에 있는 쪽방촌을 찾았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어떤 심정일지 듣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박모씨의 이야기는 쪽방 기획을 관통하는 ‘빈곤 비즈니스’라는 키워드를 던져줬다. 박씨는 1평 남짓의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그나마 가장 따뜻한 곳에 기자를 앉혀놓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10년 전 기름값이 뛴 다음부터 보일러는 멈춘 지 오래고 화장실도, 상하수도 시설도 마땅치 않은 곳에서 21년을 살아왔다. 주거와 노숙의 경계에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건물주는 한 달에 22만원을 받아가는데 그것도 몇 주 사이에 25만원으로 오른 상태였다. “집주인은 뭐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으니 “여기 일대의 모든 쪽방 건물 주인은 한사람인데 근처에 건물을 하나 세웠다더라. 집주인은 20년 가까이 살면서 생전 본 적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기자는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 길로 이 기자는 바로 일대 쪽방촌 건물들의 등기를 떼봤다. 박씨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올해 초 기획취재부로 오면서 김혜영 기획취재부 팀장, 조희연 인턴기자와 취재에 나섰다.


/한국일보 제공

▲/한국일보 제공


취재에만 5개월이 걸렸다. 첫 단계는 실소유주 추적을 위한 서울시 전체 쪽방촌 건물 등기부 등본 전수조사였다. 서울시의 쪽방 현황 내부 자료에 명기된 318채 쪽방 건물 중 등기가 돼 있는 243채를 조사해보니 다수가 강남 건물주와 지방 부유층이었다. 그는 “실소유주를 확인하기 위한 팩트체크가 필요했는데 여기서 시간이 걸렸다”며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세상에 처음 내놓는 터라 개인적으로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크로스체크를 5번 이상 했다”고 말했다.


기사를 쓸 때는 쪽방촌 문제가 단순히 선악 구도로만 그려지지 않도록 경계했다. 건물주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쪽방촌이 수십 년 동안 존재할 수 있는 건 이 문제를 시야에 두지 않는 사회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라며 “쪽방은 법적으로 제대로 된 정의조차 없고, 실체가 불분명해 각종 법망의 사각지대에 있다. 쪽방 거주자들은 임대 주택 제도권에 들어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최저 빈곤 문제를 담당하는 컨트롤 타워도 부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단칸방에 갇힌 아이들> 기획으로 아동 주거 복지 문제를 보도하기도 한 이 기자는 주거 복지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볼 계획이다. “최저 빈곤 주거 문제는 쪽방만의 얘기가 아니에요. 대학가의 원룸 건물만 봐도 버려야 하는 공간을 방으로 만든 경우가 많죠.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질 거예요. 도시의 주거 비용은 올라가는데 노동소득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주거 복지에 대해 다뤄볼 겁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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