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사 2명이 노인 18명 식사 챙기는 현실"

[기획의 힘 보여준 기자들] '요양보호사 체험 르포' 권지담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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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떠나 삶의 가치가 바뀔 정도로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근처 카페에서 만난 권지담<사진> 한겨레 기자는 요양원 한 달 체험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지난 13일 시작한 한겨레 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기획 1부 ‘돌봄 orz’를 맡아 썼다. 지난 1월29일부터 한 달간 인천과 부천의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요양원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기사였다.


기획의 시작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그 해 상반기 ‘노동 orz’ 문제를 보도한 노현웅 기자는 우리 사회 두 가지 문제 중 하나인 청년 문제를 다뤘으니 하반기엔 노인 문제를 다루자고 24시팀에 제안했다. 다양한 방식을 고민했지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노인 요양 실태를 직접 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던 경험 때문에 요양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권 기자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고, 이후 그의 현장 투입이 결정됐다. 그렇게 취재가 시작됐다.


권 기자는 가장 먼저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들어갔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전문교육기관에서 이론·실기·실습 240시간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요양보호사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부터 그는 근무에서 제외돼 하루 종일 학원에서 간호와 식품위생 등을 공부했다. 다행히 두 달 후엔 시험에 합격했고 지난 1월24일 취업에 성공했다.


권 기자는 “자격증이 나오기 전인 12월 말까진 전문가들을 만나 사전 취재를 했다. 현장에 들어가 어떤 것들을 봐야 하는지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자격증이 나오고선 바로 구직 활동을 했는데 생각보다 취업이 쉽지 않았다. 원래 방문요양인 재가요양보호사를 하려 했지만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없는 저를 어떤 가족도 쓰려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자격증을 몇 십 부씩 인쇄해 무작정 요양원에 뿌리고 다녔다. 사실 비리도 있고 더욱 심각한 곳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곳에선 다 취업을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요양원의 실태는 처참했다. ‘오직 죽어야만 퇴소할 수 있는 사실상의 수용소’였다. 근무 첫 날 점심시간, 요양보호사 2명이 노인 18명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권 기자는 ‘돌봄’보다 ‘처리’를, ‘요양’보다 ‘효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요양원의 생리를 터득했다. 밖으로 나갈 수도, 목욕을 할 수도,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도 없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밥을 거부하는 것뿐이었다. 권 기자는 “절대 들어가고 싶지도, 부모님을 들여보내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들의 근무 환경 역시 열악했다. 철저한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이 없다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80~90kg 노인의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느라 근골격계 질환을 안 달고 있는 요양보호사가 없었다. 권 기자 역시 “앉아 일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생각할 정도로 하루 종일 청소, 빨래, 식사 준비 등을 쉼 없이 했다. 퇴근할 때면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을 구겨 신어야 할 정도였다. 치매 노인에게 맞고 욕설 듣는 건 기본, 가족에게 의심받고 요양원장에게 감시당하는 등 감정노동도 심각했다. 그렇게 한 달 152시간을 일한 급여는 주휴수당 3일치를 더했음에도 146만9600원(세전)에 불과했다.


권 기자는 그런 실태를 기사에 가감 없이 기록했다. 그 때문인지 원고지 200매 분량의 긴 기사임에도 독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출판 제의를 하는가 하면 ‘이제까지 읽은 기사 중 최고였다’ ‘많은 노력과 열정으로 쓰신 좋은 기사 감사하다’ 등 누리꾼들의 호응도 이어졌다. 권 기자에게도 수십 통의 메일이 왔다. 단순히 잘 봤다는 수준이 아니라 각기 A4 3장씩은 될 정도로 궁금한 점과 대안을 묻는 글이었다.


권 기자는 “그런 독자 반응을 볼 때마다 기쁘고 뿌듯한 마음보다는 그만큼 대안을 잘 써야겠다는 책임감과 부담이 더 커졌다”며 “국가가 알아서 하라고 쓰면 편하겠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지 않는다. 기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현실 직시와 인식 개선에 있는 만큼 좋은 사례와 독자 궁금증을 최대한 반영해 팀원들과 후속 기사를 써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보도로 보건복지 분야에 대한 권 기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계속해서 이 이슈를 끌고 가고 싶다”며 “노인들과 지내며 말로 설명하지 못할 많은 감정들을 느꼈는데 실제 일 끝난 후에도 눈물이 왈칵 날 정도로 몰두를 많이 했다. 10년 뒤에 한 번 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그 때는 어떻게 변했는지 취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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