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메시지는 온데간데없고 '그 기자'만 남은 대담

국정 현안보단 논란만 남아… 대통령 취임 2주년 KBS 대담,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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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이 끝난 이후 진행자였던 송현정 KBS 기자는 질문의 적절성부터 태도나 표정 등이 도마에 올라 누리꾼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대담 시작 전 송 기자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이 끝난 이후 진행자였던 송현정 KBS 기자는 질문의 적절성부터 태도나 표정 등이 도마에 올라 누리꾼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대담 시작 전 송 기자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 KBS 대담은 대통령의 메시지는 온데간데없고 진행자의 태도 논란만 남기고 끝났다. 청와대에서 공들여 준비했을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대통령 메시지는 공론장에 흘러들지 못했다.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이런 기이한 상황은 진행자였던 송현정 기자의 이름이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송 기자는 질문의 적절성부터 태도나 표정 등이 도마에 올라 누리꾼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송 기자의 가족관계를 추적하는 등 ‘신상털기’도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대통령의 대담은 검증된 실력을 가진 대담자와 진행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여럿 올라왔고, KBS에선 송 기자를 선발한 과정을 묻거나 송 기자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청자청원이 성사돼 KBS가 7월8일까지 답변을 하게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담 이후 “문 대통령은 ‘더 공격적인 공방들이 오갔어도 괜찮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지만 논란은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다양한 곳에서 찾았지만 일차적으로 KBS의 준비 부족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종합일간지 A 논설위원은 “국회반장에 연차 22년 등 송 기자의 커리어가 밀리진 않았지만 대담 진행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80분 생방송을 맡긴 건 무리로 보였다”며 “더 철저히 준비했어야 했다. 리허설을 몇 차례 했는지 의문일 정도로 대담의 강약 조절이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다른 종합일간지 국장급 B 기자도 “질문이 두루뭉술했고 진행자가 답변을 듣기보다 다음에 무엇을 물을지 급급해 보였다”며 “대통령의 답변에서 부족한 부분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질문을 몇 번씩 하는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일부 기자들은 송 기자가 아니라 누가 했어도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C 기자는 “취재하고 기사 쓰는 실력과 유명인사를 한 시간 이상 인터뷰할 수 있는 실력은 완전히 다르다. 기자들은 으레 자기라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실제 에티켓을 모두 지켜가며 날카로운 질문을 할 수 있는 기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며 “손석희 JTBC 사장이나 다른 검증된 사람이 이번 대담을 이끌었으면 좋았겠지만 듣기로 청와대에선 대통령을 가릴 수 있는 진행자는 원치 않았다고 하더라. 결국 청와대와 KBS의 잘못된 선택이 이번 사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진영에 유리하면 받아들이고, 불리하면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문화를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목한 이도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 부장급 D 기자는 “만약 대통령에게 굽실거렸다면 반대편에서 공영방송을 사유화했다는 식의 비판이 나왔을 것”이라며 “최고 권력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언론 자유가 보장됐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E 기자도 “KBS 내부적으론 (오히려) 자신들이 정권의 스피커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던 것 같다”며 “최대한 비판적으로 접근하려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A 논설위원은 “지나친 공격과 비판으로 (결국) 대통령 메시지가 공론장에 흘러 다니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고도 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정치권의 발언이나 키워드 검색용 기사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있었다. 청와대 출입 F 기자는 “청와대는 점잖게 입장을 냈는데 여권 지도자들은 품격 있게 대응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며 “지지자들에게 인신공격은 옳지 않다거나 자제해달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덩달아 야권도 이간질 시키려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기자들은 사태의 원인을 언론의 ‘원죄’에서 찾았다. C 기자는 “만약 사람들 머릿속에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날카롭게 질문하는 기자가 있었다면 송 기자의 질문에 거부감이 덜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억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전 정권 시절 존재감 없던 기자 그룹 전체에 대한 혐오감이 맞물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B 기자도 “문 대통령 지지층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언론에 대한 불신 탓도 크다”며 “기자들이 심사숙고하고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대담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지만 앞으로 이를 더욱 정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E 기자는 “국민들이 대통령 생각을 충분히 듣기 위해선 기자회견에서 중구난방 이 회사 저 회사 질문하는 것보다 대담 형식이 더 나을 것 같다”며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렇지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본다. 소통수석실에도 얘기했지만 대담이 정례화 돼서 꼭 방송만이 아니라 신문과도 깊이 있게 인터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정기적으로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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