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실종시대… 무단으로 베끼는 악습 버리자

[스페셜리스트 | IT·뉴미디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배경 설명도 해주고, 관련 자료도 보내줬다. 취재 열정이 대단해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기사를 보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인용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떤 교수에게 들은 얘기다. 그 얘길 해준 교수는 “기사 말미에 하나마나한 얘길 내 이름으로 인용했더라”고 했다. 참고 자료까지 모두 기자의 지식으로 둔갑해 있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용에 대한 상식도 없더라”고 개탄했다.


외신 표절 논란을 보면서 오래 전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물론 이번 표절은 정도가 좀 심했다. 하지만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한국 언론의 잘못된 인용 관행과 만나게 된다.


한국 언론은 경쟁사 기사 인용 보도엔 극도로 인색하다. 최초 보도 매체를 인용해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적당하게 갈무리한 뒤 ‘관련 당사자에 따르면’ 이란 두루뭉술한 취재원을 갖다 붙이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인터넷언론 보도에 따르면”이란 웃지 못할 인용 보도 사례도 적지 않다.  


외신 보도는 더 심하다. 이런 저런 기사를 적당히 짜깁기해서 쓰는 게 일반화됐다. 이 때도 정확한 출처를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다보니 때론 ‘의식의 흐름’ 같은 서술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외신 인용이고, 어디까지가 기자의 생각인지 애매모호한 경우도 적지 않다.


업무상 자주 접하는 미국 언론에선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후속 보도할 땐 꼭 최초 보도 매체를 언급해준다. 물론 해당 기사의 링크도 함께 제공한다. 독자들이 원할 경우 경쟁사 사이트에 가서 최초 보도 기사를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1인 미디어에 실린 글을 인용할 때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물론 저작권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무게 차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언론의 인용 실종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난 한국 언론사에 만연한 ‘우라까이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입 기자 시절부터 이런 저런 기사 적당히 갈무리해서 내보내는 관행에 젖다보니 표절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둔감해졌단 얘기다.


제대로 된 인용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우라까이 관행’부터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남의 저작물을 존중하고, 성과를 인정해주는 문화가 싹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자 출신 고위 공직자가 임명될 때마다 언론들은 논문 표절 찾기 경쟁을 벌인다. 굉장히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비판한다. 물론 이런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선 우리도 떳떳해야 한다. 표절과 베끼기를 일삼으면서 남의 표절을 매섭게 비판하는 건 떳떳한 처사는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해묵은 ‘우라까이 관행’을 버리는 건 그래서 더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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