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액 보석금은 얼마일까

[스페셜리스트 | 법조] 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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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

▲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

한국에서 ‘억대 보석금 시대’가 열린 건 지난 1997년이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곽정환 당시 합동영화사 대표는 “세무공무원에게 법인세 5억원을 환급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1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자 보석금 1억원을 내고 풀려났다. 곽 대표는 법원의 보석허가 결정 당일 1억원짜리 자기앞수표 1장을 법원에 냈다. 종전 보석금 최고액은 사기 혐의를 받던 김모씨가 부산지법에서 낸 현금 5000만원이었다.


대법원 전산정보국에 따르면 2003년에 사상 최고액 보석금이 나왔다. 당시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 1부는 자신의 회사에 980여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특가법상 배임)로 구속 기소된 김춘환 ㈜신한 회장에 대해 20억원의 보석금을 예치하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43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와 임대주택을 고가로 분양 전환해 폭리를 취한 혐의로 기소된 이중근 부영 회장이 최근 그와 동일한 20억원의 보석금을 낸 정도다.


지난 6일엔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석방하면서 10억원의 보석금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 전 대통령은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회사 자금 350억원을 횡령하고 삼성에 다스의 소송비를 대납시키는 등 111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2006년 현대차 비리 사건으로 구속됐던 정몽구 회장과 ‘황제 보석’ 논란을 빚었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보석금도 10억원이었다.


해외는 보석금의 규모가 크다. 지난 2004년 사기와 부정수급 등의 혐의로 체포됐던 일본 식육업체 ‘한난’의 아사다 미츠루 전 회장은 20억엔(약 200억원)을 보석금으로 냈다. 최근 금융상품거래 위반 등 혐의로 체포된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은 지난 6일 10억엔(약 100억원)의 보석금을 계좌이체로 지불하고 구속된 지 108일 만에 풀려났다. 당시로선 전후 최대 배임사건인 ‘이토만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재일한국인 조폭 허영중씨가 보석 중 도주해 보석금 6억엔(약 60억원) 전액이 몰취된 사건도 있었다. 중동이나 미국에선 ‘조 단위’ 보석금도 종종 보도된다.


국내에선 거액의 보석금이라도 총 금액의 1%만 보험회사에 내고 발급받은 보석보증보험증권으로 갈음하는 게 실무상 관행으로 정착돼 있어 실제 피고인의 부담은 크지 않다. 다만 이 보석금이 어떤 기준으로 산정되는지는 불명확하다. ‘피고인의 재력과 환경’이 고려 요소지만 ‘내 재산이 얼마인데, 얼마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될 수 있다’는 따위의 예측 기준이 공개돼 있지 않아서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 자산 정도로 이행할 수 없는 보증금을 내걸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만 있을 뿐, 금액의 대소는 오롯이 법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정작 피고인들의 관심은 보석금 산정기준보다 딴 데 있다. “기자양반, 내가 보석을 받을 수 있는지부터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오”라는 취지다. 맞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7년 구속기소된 피고인 5만3555명 중 보석을 청구한 사람은 6079명, 보석으로 풀려난 사람은 2204명으로, 전체 구속피고인 중 4.1%만 보석으로 석방됐다. 최근 10년간 보석허가율은 지속 하락 추세다. 물어본 피고인들에겐 큰 실수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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