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왜 이래"… 기자의 눈에는 전두환이 초라해보였다

[기고] 광주 법정에 선 전두환씨를 보며 / 선정태 무등일보 사회부 차장

선정태 무등일보 사회부 차장.

▲선정태 무등일보 사회부 차장.

지난 11일,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지 39년 만에 ‘피고인’ 전두환이 드디어 광주 법정에 섰다. 지난 2017년 자신이 쓴 책을 통해 1980년 5·18 당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다.
그는 재판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갖은 핑계를 대며 사법부를 무시하고 농락하더니, 강제구인장이 발부되고서야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전씨에게 내려진 구인장은 끝내 집행되지 않았다. 일반 국민들이라면, 애초에 강제구인되기 전에 재판에 출석했겠지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전씨는 오래 전에 대통령직을 박탈당했지만 여전히 특혜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전씨가 집에서 걸어 나오던 모습에서도, 광주지법 후문 입구 코앞까지 차로 온 후 겨우 20여 발자국 만에 들어서는 모습에서도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연상하기 어려웠다. 기자의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며 보인 신경질적인 반응에서도 90살이 된 노인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전씨가 포토라인에 서서 광주시민과 국민들에게 참회의 눈물은 아니더라도 용서나 사과의 한마디쯤은 할 것이라는 상상도 했었다. 정작 전씨가 광주에 내려와서 한 말은 ‘이거 왜 이래’와 재판장에서 자신의 생년월일과 주소를 묻는 질문에 ‘네 맞습니다’ 몇 마디가 전부였다.


더군다나 전씨와 전씨의 입인 변호인은 ‘팩트’를 무시하고 왜곡하기까지 했다. 그가 5·18 때 행한 집단발포와 시민학살, 암매장 등 수많은 만행은 인정하지만, 헬기 사격만은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그가 이날 보인 행동과 말은 국민들의 눈에는 ‘뻔뻔함’으로 보여 분노하기도 했겠지만, 기자의 눈에는 ‘초라함’으로 보였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철저한 외면과 왜곡만이 그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가 싶어서다.


말 바꾸기로 그때그때만 모면하면 된다는 얄팍한 수를 그 많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효과를 볼 것이라고 착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전씨 부부는 지난 2016년 5·18민주화운동 36주년 전날 “광주에 가서 돌을 맞아 5·18 희생자 유가족들의 오해와 분이 다 풀린다면 뭘 못하겠느냐”라고 밝혔다. 전씨는 이날, 어쩔 수 없이 광주에 왔지만 돌 맞을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오해’가 아니기 때문에 돌을 맞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전씨가 초라함을 보이던 순간, 법원 밖 광주시민들은 여전히 성숙했다.


재판이 열리기 전부터 광주지방법원과 그 주위는 많은 오월 단체 회원들과 오월 어머니들, 시민들로 붐볐다. 전씨의 만행을 규탄할지언정 개인적인 원한을 풀지 않겠다 다짐했고, 끝까지 자제했다.


특히 오월 단체들의 방청권 추첨 때부터 그들의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적인 관심을 보이는 빅이슈인데다, 전씨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유가족들은 전씨를 보면 분통을 참기 어려울 것 같아 방청권 추첨에도 응모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가는 전씨를 보며 끝끝내 울분을 참지 못한 시민들은 고작 그의 차를 막는데 그쳤다. 39년 전 자식을 잃은 후 세상 어떤 슬픔과 고통에도 비교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사는데, 끝끝내 반성하지 않는 원흉 때문에 더 이상 살 수 없으니 이제는 나를 죽여 달라는 의미였다.


전씨의 재판은 이제 막 시작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 시간동안 팩트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주장을 벌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광주시민들의, 오월 유가족들의 울분은 그가 사법 처리된다고 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죄 없는 광주시민들을 학살했다는 그의 사죄 한마디면 된다. 그의 사죄가 40년을 앞둔 5·18민주화운동의 왜곡과 폄훼를 종식시킬 수 있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전씨가 40여년을 삭힌 원수를 앞두고도 분을 삭인 광주의 관대함을 조금이라도 느끼길 바란다. 이제라도 초라함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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