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리지 않지만 들어야 될 목소리 경청하겠다"

한국기자상 수상자 수상소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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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은 취재진들과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격려이자 앞으로 저희에게 주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50회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선 우리 사회 외면 받은 이들을 위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현장 곳곳을 뛰어다닌 기자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기자들은 취재원, 제보자들에게 공로를 돌리며 “잘 들리지 않지만 들어야 될 목소리를 듣기 위해 경청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래는 수상소감 전문이다.


<안태근 성추행 사건 폭로 및 ‘미투’ 운동>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김지아 박소연 이지혜 신진 윤재영 JTBC 기자.

▲<안태근 성추행 사건 폭로 및 ‘미투’ 운동>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김지아 박소연 이지혜 신진 윤재영 JTBC 기자.

<안태근 성추행 사건 폭로 및 ‘미투’ 운동> 김지아 JTBC 기자
일단 이 보도는 모두 아시다시피 서지현 검사라는 한 사람의 용기로 시작된 보도다. 저희 기자들은 그 목소리가 지핀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노력한 것밖에 없어 사실 좀 송구스럽다. 서 검사의 목소리를 보도한 이후에 법조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미투를 외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사회의 그릇된 시선 속에서 그동안 숨어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건 사실 제가 그동안 해왔던 취재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보도 과정에서 저희 취재팀 모두 많이 분노하고 반성하고 그리고 또 많이 배웠다.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배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련의 미투 보도를 하면서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본의 아니게 태교에 안 좋은 이야기를 전달해서 많이 미안한데, 앞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했던 거라고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한다. 이 상은 그래서 저희 취재진들과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격려이자 또 앞으로 저희에게 주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감사하다.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김현경 이해인 박소희 이동경 MBC 기자.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김현경 이해인 박소희 이동경 MBC 기자.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김현경 MBC 기자
일단 이렇게 영광스러운 상을 저희 팀에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이 보도는 사실 비리를 밝히겠다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민의 출발점은 정책의 실패, 정치의 실패가 어디서 오느냐에 있었다. 무상보육 정책이 7년 전에 처음 시작될 때 나라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정작 수요자인 학부모에 돌아가지 않고 유치원 단체와 어린이 단체에게만 돈이 지원되는 형태로 시작됐다. 취재기자로서 왜 이렇게 상식과 어긋나는 정책이 시작됐는가 취재를 했더니 그 때 당시 국회의원들의 얘기가 국회에 찾아오는 사람은 유치원 원장과 어린이집 원장들만 찾아오지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정책이 어긋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서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가 유치원의 비리 내용이 교육청 감사 결과 다 적발됐는데도 공개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그럼에도 유치원단체와 교육청, 또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건드리지 않는 언론들과 모든 상황 속에서 정작 학부모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보며 저희가 명단 공개를 추진하게 됐다. 한유총이라는 단체가 얼마나 큰 이익집단이고 많은 힘을 갖고 있는 단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법적 검토 등으로 오랜 준비기간이 걸렸다. 취재기자들이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회사에 얘기했을 때 기꺼이 저희 보도국에서 감수할 수 있다면서 시간과 여러 기회를 열어주셨고 회사 내부뿐만 아니라 회사 외부 법률자문을 다 거쳐 이런 보도가 가능했다. 그 바탕에는 이런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온 시민들의 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언론이 어렵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 원인과 해답이 사실 저희 보도 속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 시민들이 원하는 보도가 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고 앞으로 더욱 노력하도록 하겠다. 감사하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유영규 임주형 이성원 신융아 이혜리 서울신문 기자.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유영규 임주형 이성원 신융아 이혜리 서울신문 기자.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이성원 서울신문 기자
이 상을 주신 기자협회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린다. 상을 받으려고 기사를 쓴 건 아닌데 이렇게 상까지 받게 돼 너무 기쁘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사실 우리 모두의 얘기다. 그래서 울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령사회나 초고령사회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엔 이미 많은 사람이 간병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저희 어머니가 이 자리에 오셨지만 사실 취재를 하면서 만약 부모님이 아프시면 어떡하지 고민하며 취재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기사가 나가고 현실에서는 크게 바뀌고 나아진 점은 없는 것 같다. 치매 국가책임제나 발달장애 국가책임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간병의 부담은 여전히 가족의 몫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취재하면서 저희도 많이 망설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자식을, 부모님을 죽인 사람에게 왜 그랬냐고 묻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물을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함께 있어준 선후배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린다. 제가 입사하고 어느덧 9년차가 됐는데 이렇게 분위기가 좋았던 부서는 없었던 것 같다. 이게 다 저희 부장께서 저희를 세심하게 배려해주셔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저희 보도가 나올 때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매일 기사를 써야하는 일간신문으로선 기다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때까지 저희를 믿고 기다려준 저희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저희 부장께서 꼭 이 말씀은 하라고 했는데 저희 고광헌 사장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린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무작정 집에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픈 얘기를 어렵게 해준 인터뷰이 분들께 이 상을 돌리고 싶다. 감사하다.


<에버랜드의 수상한 땅 값 급등과 삼성 차명부동산>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SBS 탐사보도부.

▲<에버랜드의 수상한 땅 값 급등과 삼성 차명부동산>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SBS 탐사보도부.


<에버랜드의 수상한 땅 값 급등과 삼성 차명부동산> 이병희 SBS 기자
지난해 초에 저희가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당연히 이런 자리는 꿈에도 꾸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우리가 취재하는 내용이 이야기가 될까 안 될까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작은 의심에서 상당히 긴 여정이 이어졌다. 취재가 잘 될 때는 아주 좋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렇게 잘 될 때보다 막힐 때, 답답할 때, 끙끙댔을 때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기자로서 행운이라고 하면 앞서 다른 팀도 말했지만 저희 팀이 참 괜찮은 팀이었구나, 그리고 선배들이 우릴 끝까지 믿고 기다려줬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몇 번이고 중도에 포기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한국의 기자라면 가장 받고 싶은 상이 이 상인데 이 상을 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 잠깐 멈춰 서서 생각해봤다. 과연 우리 뉴스가 어디로부터 비롯됐는가 생각해봤다. 저희가 멋지게 기사를 쓰고 유려하게 구성하고 CG를 화려하게 입힌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들이 있던 자리에서 뭔가 부조리함을 보고 양심에 따라서 용기를 냈던 분들, 제보자분들,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보도가 가능했던 것 같다. 그 분들에게 더더욱 감사를 드리고 어쨌든 저희 팀 올해도 잘 들리지 않지만 들어야 될 목소리 듣기 위해서 경청하도록 하겠다. 감사하다.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절규의 기록’>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안준영 김준용 부산일보 기자.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절규의 기록’>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안준영 김준용 부산일보 기자.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절규의 기록’> 안준영 부산일보 기자
먼저 기자상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한국기자상을 받게 돼 너무나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저희 형제복지원 보도가 있기 전에는 여러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30년이나 지난 일이고 형제복지원 이야기는 부산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데 거기서 또 어떤 걸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저희가 보도를 하고 난 뒤로 정말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연락을 주셨다. 내 아버지, 우리 오빠, 동생이 형제복지원에서 죽었을 지도 모른다, 사망 자료라도 좀 알 수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본인이 죽기 전에 제사라도 한 번 모셔야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다. 이렇게 저희의 기자상은 피해자분들의 피눈물 위에 쓰인 거라고 생각한다. 형제복지원과 관련해서는 대법원의 비상상고 조치도 있었고 오거돈 부산시장과 문무일 검찰총장의 사과도 있었지만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는 국회에 계류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통과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피해자분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진상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현장에서 듣고 기록하겠다. 감사하다.


<프랑스 내 한국독립운동사 재발견> 보도로 조계창 국제보도상을 수상한 김용래 연합뉴스 기자. 파리 특파원인 김 기자는 영상으로 수상소감을 보내왔다.

▲<프랑스 내 한국독립운동사 재발견> 보도로 조계창 국제보도상을 수상한 김용래 연합뉴스 기자. 파리 특파원인 김 기자는 영상으로 수상소감을 보내왔다.


<프랑스 내 한국독립운동사 재발견> 김용래 연합뉴스 기자 (제9회 조계창 국제보도상)
먼저 큰 상을 제게 주셔서 멀리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저는 이번에 프랑스 내 한국독립운동사 재발견 보도로 상을 수상하게 됐는데 제 기사가 특별히 참신하거나 아주 큰 파급력을 지녀서 상을 주셨다기보다 올해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상을 주신 것 같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저에게는 조계창이라는 이름을 딴 상을 받는 게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조계창 선배는 10년 전에 선양특파원 나가기 전에 국제뉴스부에 잠깐 있을 때 제 옆자리에 많이 근무했다. 그래서 선배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되니까 아주 만감이 교차한다. 멀리서, 하늘에서 제가 상을 탄 것을 알면 선배가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남은 임기 동안, 앞으로 기자 생활 하면서 계속 좋은, 의미 있는 기사를 쓰도록 노력하겠다. 감사하다. 항상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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