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대로' 사라졌지만 이벤트성은 곤란… 대통령·기자들 자주 만나야

'사회자 대통령' 돋보인 생중계 기자회견,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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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이날 기자들은 대통령의 선택을 받기 위해 휴대전화나 책을 흔들거나 모자를 드는 등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이날 기자들은 대통령의 선택을 받기 위해 휴대전화나 책을 흔들거나 모자를 드는 등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도 ‘파격’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직접 사회자로 나서 질문자를 지목하고 질의응답을 이끌었다.


문 대통령이 TV로 생중계되는 공식 기자회견을 연 것은 2017년 8월 취임 100일, 지난해 신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다. 세 차례 기자회견 모두 청와대와 기자단 간 ‘각본’ 없이 즉석에서 묻고 답하는 형식이었다. 올해는 추가 질문이나 토론이 가능한 ‘타운홀 미팅’ 방식을 취했다.


문 대통령과 기자들의 물리적 거리는 지난해보다 가까워졌다. 문 대통령이 앉은 자리도 지난해와 달리 연단 없이 기자들과 같은 높이로 배치됐다. 대통령 참모진은 별도 구역이 아닌 기자들 사이에 앉아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문 대통령과 기자들의 일문일답은 외교안보, 경제, 정치사회 분야로 나뉘어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현장에 있던 청와대 출입 내외신 기자 180여명은 질문 기회를 얻기 위해 연신 손을 들었다. 이 가운데 22명이 지목돼 마이크를 잡았다. 방송사와 외신이 각각 5곳, 통신사와 경제지가 4곳씩, 지역지가 2곳, 중앙일간지와 인터넷신문은 1곳씩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아쉬움도 크다는 반응이었다. 청와대 출입 A 기자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취임 100일과 작년 기자회견에 비하면 올해는 진행이나 내용면에서 매끄러웠던 것 같다”면서 “문 대통령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거나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걸 깜짝 공개하는 등 솔직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일간지 소속 B 기자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문 대통령이 ‘김태우 수사관, 신재민 전 사무관’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며 “문 대통령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무엇인지도 자세하고 분명히 설명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최대한 답변하려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지목한 질문자 가운데 외신기자(5명)가 너무 많았다거나 상대적으로 종합일간지(1명)가 너무 적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방송사 C 기자는 “질문한 기자가 모두 22명이었는데 그중 외신기자 5명은 좀 많지 않았나 싶다”며 “그만큼 국내 기자들의 질문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고 했다. 일간지 D 기자는 “외신의 질문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종전선언, 한반도 비핵화, 국제관계보다 경제 등 국내 현안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며 “질문분야 순서도 외교안보가 아니라 경제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 앞서 발표한 신년사 중 90%가 경제 이야기일 정도로 국정기조가 경제에 쏠려 있는데 더 많이 묻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꼭 질문했어야 할 사안을 놓쳤다는 비판도 많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질문자·질문 내용을 미리 정해놓고 각본대로 기자회견 하는 관례는 사라졌지만, 기자들끼리 질문을 논의하는 과정조차 없어지다 보니 질문이 다양하지 않거나 질문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간지 E 기자는 “100분간 전체적으로 질문 개수가 작진 않았는데 일부 질문은 겹치기도 했고 개각, 부동산, 광화문 대통령 시대 무산 등 중요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며 “김태우, 신재민 사건 등에 대해선 추가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간지 F 기자는 “기자들과 대통령이 사전 약속 없이 자유롭게 문답을 주고받은 방식은 옳지만,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질문을 생각하다 보니 다들 비슷비슷한 것만 준비하게 된다”면서 “질문자로 지목돼도 내가 물어보려 했던 내용이 이미 앞에서 나왔다면 더는 새로운 질문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 일간지 G 기자는 기자회견 형식과 별개로 기자들의 준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G 기자는 “기자회견 형식이 파격적으로 변한 건 사실이지만, 어느 정부에서나 대통령 기자회견은 청와대 기자들이 국민을 대표해 질문하는 자리라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며 “우리가 이번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만족할 만한 질문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G 기자는 기자회견을 앞두고 기자들이 큰 틀에서라도 무엇을 질문할지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출입했던 일간지 H 기자도 “지난 정부 당시 기자들이 질문 내용을 협의했던 건 1년에 한두 번뿐인 기자회견에서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였다”며 “이번 기자회견을 보면 오히려 기자들의 질문 수준은 떨어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자회견은 1년에 한두 번, 이벤트성으로 열린다”며 “대통령과 기자들이 자주 만나지 않는다는 본질 자체는 그대로고 진행 방식만 달라진다면 우리가 기대했던 토론 역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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