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SBS가 부리고, 돈은 SBS미디어홀딩스로 가는 기묘한 체제

[미디어 인사이드] 노조, 왜 SBS와 SBS미디어홀딩스 합병 주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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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집행부가 서울 양천구 SBS 로비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SBS본부는 지난 2일부터 홀딩스 체제 해체를 주장하며 로비 농성을 시작한 데 이어 오는 18일까지 부문별 조합원 간담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일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집행부가 서울 양천구 SBS 로비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SBS본부는 지난 2일부터 홀딩스 체제 해체를 주장하며 로비 농성을 시작한 데 이어 오는 18일까지 부문별 조합원 간담회를 이어가고 있다.

‘더 이상은 못 견딘다. 홀딩스 체제 완전 청산!’ 지난 2일 서울 양천구 SBS 로비에 피켓 여러 개가 걸렸다. SBS미디어홀딩스 체제를 청산하고 SBS 정상화를 완성하자는 내용의 피켓들이었다. 피켓을 붙인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는 홀딩스와 SBS의 합병을 요구하며 최근 로비 농성을 시작했다. 지난 8일부터 오는 18일까지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확산시키겠다며 부문별 조합원 간담회를 이어가고 있다.


SBS본부가 홀딩스 체제 해체에 나선 것은 해묵은 지주회사 문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다. SBS는 2004년 재허가 국면에서 대내외적으로 쏟아진 방송 독립성 확보와 경영투명성 강화 요구로 2008년 지주회사인 홀딩스 체제로 전환했다. 당시 SBS 사측과 대주주는 홀딩스 체제에서 ‘소유-경영 분리의 제도화’ ‘SBS와 계열사 간 내부거래 투명성 증대’ ‘콘텐츠 경쟁력 강화와 사업 경쟁력 제고’를 약속했는데, SBS본부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10년 동안 이 약속은 사실상 폐기됐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소유-경영 분리를 제도화한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윤세영 회장과 윤석민 부회장이 방송 콘텐츠 내용에까지 개입할 정도로 방송을 사유화했다”며 “불공정거래행위도 만연했다. 또 다른 자회사가 SBS 콘텐츠에 기생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형제사들의 이익을 맞춰주느라 SBS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아무 노력도 하지 못했고, 사실상 모든 체질 유지비용을 떠안았다”고 말했다.  


SBS본부에 따르면 지주회사 전환 이후 방송법상의 지분제한 없이 지주회사를 지배하게 된 태영건설(태영)은 SBS에서 창출된 이익을 홀딩스 계열사로 옮기는 방식으로 SBS를 착취했다. 홀딩스를 지배하고 있는 태영이 홀딩스 계열사인 SBS콘텐츠허브, SBS플러스 등에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SBS와 불균등한 계약을 맺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2008년 SBS의 홀딩스 내 타 계열사 간 콘텐츠 수익배분율은 38%에 불과했다.


정작 콘텐츠를 생산한 SBS가 턱없이 낮은 수익을 얻자 노사 갈등이 시작됐고, SBS 노사는 매해 싸우며 요율을 수정해 지난해 수익배분율을 78%까지 올렸다. 그러나 그동안 SBS의 수익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SBS본부가 사측 자료를 근거로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유출된 SBS 수익은 3788억원으로 추정된다. SBS가 창사 이래 지금까지 모아놓은 유보금에 육박하는 액수가 지주회사 체제 10년 동안 고스란히 유출된 셈이다.


이 때문에 SBS는 지속적인 장기 적자 사이클에 진입하고 있다. 2012년 이후부터 적자와 흑자를 오가며 추세적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올해 역시 흑자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상파 광고 시장 붕괴와 콘텐츠 경쟁력 하락 외에도 지주회사 체제라는 이중고를 떠안고 있어서다. SBS 구성원들 역시 지주회사 체제가 SBS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2017년 3월 SBS본부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7.6%가 지주회사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특히 83.2%가 지주회사 체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SBS 수익의 부당한 유출을 꼽았다.


윤창현 본부장은 “이 때문에 2017년 10월13일 노사와 대주주가 SBS 수익구조를 정상화하자는 합의문에 서명하고 지난 1년간 온갖 방안을 찾았다”며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임금은 고사하고 일자리도 지킬 수 없을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출된 유보금을 회수하거나 일부 자회사를 SBS가 돈 주고 사오는 건 불가능했고, 때문에 최근에야 홀딩스와 SBS의 합병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데 이르렀다”고 말했다.


노조가 홀딩스와의 합병을 주장하는 이유는 홀딩스가 내용적으로 이미 해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홀딩스는 콘텐츠 제작 및 유통, 방송 경영 등 모든 기능을 SBS에 위탁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직원이 5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SBS가 홀딩스와 합병하면 콘텐츠 판매 기능, 채널 유통 기능, 전략 기능을 전부 수직계열화 하면서 유출됐던 수익도 홀딩스 및 계열사의 유보금으로 SBS에 내재화할 수 있다.


윤 본부장은 “이렇게 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콘텐츠 투자도 확대할 수 있고 계열사 간 업무나 기능 중복도 해소된다”며 “무엇보다 내부에서 일만 생기면 대주주 탓하는 문화 역시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합병을 하면 대주주와 함께 조직혁신과 미래 비전을 공동으로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은 최근 조직을 개편하며 채널과 유통기능을 수직계열화 하고 있다. MBC는 지난해 11월 대대적으로 조직을 개편하며 김영희 전 PD를 콘텐츠 총괄 부사장으로 임명하고 산하에 드라마와 예능을 포함한 4개 제작본부는 물론 콘텐츠 유통, 프로모션, 마케팅, 홍보, 사업 기능까지 포괄하도록 했다. 또 전략편성본부를 신설해 MBC 본사와 관계사 전반의 콘텐츠 및 매체전략을 수립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겼다. KBS도 조만간 미래형 조직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SBS 사측은 외부 컨설팅을 맡겨 홀딩스와 SBS의 합병 등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SBS 관계자는 “컨설팅 업체에 홀딩스 해체와 함께 콘텐츠 판매, 제작 기능의 수직계열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맡겼다”며 “노조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100% 맞을 수는 없어 외부 컨설팅을 선택했다. 1차 검토 결과가 나오면 그걸 토대로 노조와 협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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