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지닌 가치

[컴퓨터를 켜며] 최승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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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최승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아니 회원사를 까는 협회가 어디 있습니까?”


기자협회보 기자로 지내다 보면 종종 기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비판을 업으로 하는 언론 역시 공적인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덴 누구나 동의하지만 당사자가 되면 ‘네가 뭔데’, ‘넌 얼마나 잘 났냐’는 말이 붙는다. 특히 업계 내 비판에 조심스럽다. 매일 마주치거나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에 언제고 공수가 뒤바뀔 수 있으니 당연하다. 새해 벽두부터 이런 얘길 하는 이유는 ‘새해’라서다. 2019년을 원년으로 언론계가 서로 ‘까는’ 화기애매한 분위기로 달라졌으면 해서다.


최근 몇 년을 보면 신문이나 방송사 주요 매체들이 타 언론사를 보도로 다루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공영방송사 관련 기사 정도가 거의 전부다. 지난해 정상화 국면 당시 보수언론의 KBS, MBC 사장 선임 과정에 대한 지적, 이전 정권에서 당시 경영진에 대한 진보언론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나마도 사장 선임을 비롯해 공영방송사가 지니는 정치적 의미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5~6년을 돌아봐도 2013년 초 매일경제와 한국경제, 2015년 연합뉴스와 머니투데이그룹 간 충돌 정도가 눈에 띈다. 경쟁 사업자 간 묵은 감정이 폭발한 게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뉴스들. 그러니까 우리 언론에게 타 언론은 ‘성역’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나 악감정 없이는 뉴스가 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인력 투입 역시 줄대로 줄어서 주요 신문사 중 미디어 지면을 1~2주 단위로라도 고정적으로 할애하는 경우는 현재 한겨레신문 밖에 없다.


왜 언론의 언론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가. 그게 언론계는 물론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론들이 서로의 보도를 활발히 비평할 때 기자·언론으로선 긴장감이 높아진다. 선수는 선수의 비판을 가장 의식하고 민감해 한다. 당연히 뉴스의 질적 향상이 도모된다. 특히 언론이 보도를 통해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게 필요하다. 언론사 간 다툼은 업계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 결과는 공공의 이익에 대한 부합으로 이어진다. 경쟁 사업자 간 진흙탕 싸움으로 비춰져 언론에 대한 인상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우리 언론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다. 잃을 게 없다면 뭐라도 하는 게 맞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지 않나. 악플을 두려워 하기 보단 변곡점의 계기를 만드는 게 절실하다.


다행히 지난해 언론계엔 이런 관행을 개선하려는 미약하나마 몇몇 시도들이 있었다. 제일 앞엔 KBS ‘저널리즘 토크쇼J’가 오는 게 마땅하다. 이제껏 나온 한 편 한 편이 모두 완벽했다고 생각진 않는다. 하지만 첫 발을 뗀 사례로서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비판의 대상이 된 타사 기자가 보도로 이를 재반박하고, 개인 SNS 계정을 통해 항변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결과다. 일각에선 ‘KBS나 잘해라’, ‘KBS가 그럴 자격이 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비판에 필요한 건 엄밀함이지 자격이 아니다. 하물며 기자나 언론사라는 것 말고 더 필요한 자격이 있을까. 어쩌면 지금 언론의 현실은 언론이 다른 언론을 ‘성역’으로 둔 지점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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