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하지 않을 자유, 질문 할 자유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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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국내 관련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 간담회 현장에서다. “사전에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문제는 질문받지 않겠다. 외교에 관해서는 무슨 문제든지 질문해주시면 제가 아는 대로 답변드리겠다”는 것이 그의 방침이었다.


당초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춘추관은 기내 간담회에서 질문 5개를 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세부적인 질문내용은 공유하지 않았지만 대략 외교현안 3개, 국내현안 2개 정도의 질문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기자단은 이 방침을 따랐다. 먼저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가능성, 비핵화 진전방안, 한미관계 등 3가지 외교현안을 질문했다. 그리고 국내현안 2가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하나는 경제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문 대통령이 질문을 도중에 끊는 바람에 나오지 못했지만 짐작컨대 특별감찰반 비위 문제였을 것이다.


‘비행기 내부’라는 공간의 특수성, 여기에 순방 중인 대통령의 피로 등을 감안해 질문 개수가 5개로 제한됐음을 전제할 때, 기자들이 김정은 답방·비핵화·한미관계·경제·특별감찰반 문제를 묻고자 한 것은 합리적이었다고 판단한다. 이 자리에서 ‘신남방정책의 성과’라든가, ‘G20회의를 계기로 본 포용국가 비전의 전망’ 같은 걸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기회가 제한돼 있다면 기자들은 대통령의 관심사항보다는 시민의 관심사항에 대한 질문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내 현안을 언급하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도 타당하다고 볼 측면이 있다. 청와대의 설명처럼, 순방 중인 상황에서 국내 문제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면 순방외교의 흐름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 특감반 문제 같은 건 순방을 떠나온 직후 불거졌기 때문에, 귀국 후 돌아가서 종합적인 보고를 받고 정밀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답변하지 않을 이유’에는 해당할지 몰라도, ‘질문 자체를 거부할 이유’까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은 정무적 판단에 근거해 국내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있다. 답변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가 기자들의 질문할 자유를 침해하는 선까지 가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에게 답변하지 않을 자유가 있듯, 기자들에게도 질문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도중에 자른 것은 유감스러운 측면이 있다. “국내에서 관심사가 큰 사안이 벌어졌기 때문에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다”며 말을 꺼내는 기자에게 “아니다. 제가 질문받지 않고 답하지 않겠다”고 한 것인데, 질문을 끝까지 들었다면 어땠을까. 듣고 난 뒤 ‘국내문제는 답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순방 중인 대통령이 외교문제만 말하겠다는 데도 끝까지 자기들 하고 싶은 질문만 한 기자들을 향해 비난 여론이 인다. 반문해 본다. 전직 대통령이 그랬다 하더라도 같은 여론일까? 전직 대통령이 외교문제만 답하겠다고 제한했을 때, 기자들이 순순히 외교문제만 물어봤더라면 여론은 기자들을 향해 ‘순치됐다’며 탓하지 않았을까? 물론, 여기에는 전 정권 시절 물어야 할 질문을 묻지 않았던 언론의 과오도 크다. 그 과오를 정권에 관계없이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해야 할 질문을 해놓고 비난받는 지금의 패턴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론과 언론의 성숙이 모두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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