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특종 DNA'… 고개 드는 지상파

이어지는 특종이 제보 이끌고, 다시 특종 나오는 구조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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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살아나고 있다.”


지상파의 특종 DNA가 깨어나고 있다. 거대 권력의 치부와 민낯을 폭로하고 사회 각 분야의 비리를 고발하는 보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저녁 뉴스 시간을 장식한다. 몇 년 사이 시청률과 신뢰도, 영향력까지 잃고 ‘이빨 빠진 호랑이’ 같던 지상파 뉴스의 야성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SBS다. 올해 SBS가 보도한 굵직한 특종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끝까지 판다’팀이 보도한 삼성 에버랜드의 수상한 공시지가 의혹과 이건희 회장 일가의 차명부동산 실체부터 라돈 침대, BMW 차량 화재 등이 줄을 이었다. 최근엔 컬링 국가대표팀을 시작으로 체육계 비리를 연속 고발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SBS는 10월까지 이달의 기자상을 무려 11건 수상했다. 지난해 수상 기록(5건)의 2배를 이미 넘어섰다. 지난 23일에는 ‘끝까지 판다’ 팀이 SBS 보도국 최초로 전국언론노조가 수여하는 민주언론상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명원 SBS 탐사보도부 데스크는 “지난해 보도 자율성 확보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취재하고 냉정하게 보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SBS가 앞서나가자 ‘후발주자’인 두 공영방송에도 발동이 걸렸다. 오랜 파업과 사장 교체로 지상파 3사 중에서 보도국 재정비가 가장 늦었던 KBS는 최근 들어 눈에 띄는 단독 보도들을 내놓고 있다. 1400억원대 회사자금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황제보석’ 논란을 최초 보도해 국정감사 기간 여론을 달궜고, 교도소 ‘독방 거래’의 실태를 알린 교정시설 비리 연속 고발과 사립학교 감사 보고서 입수 보도도 눈길을 끌었다. SBS의 ‘끝까지 판다’처럼 탐사보도부의 보도는 ‘탐사K’로, 사회부의 심층 기획은 ‘끈질긴K’로 브랜드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일단 SBS를 잡는다”는 게 보도국 내부의 암묵적인 목표다.



MBC는 최근 비리 유치원 감사 결과 공개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MBC가 이른바 ‘정상화’ 이후 가장 뜨거운 반응을 체감한 보도였다. 박소희 MBC 정치팀 기자는 “공영방송 MBC가 추구해야 하는 뉴스란 그런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PD수첩’과 ‘스트레이트’도 MBC 탐사보도의 쌍끌이 역할을 하며 공영방송 MBC의 가치를 새삼 확인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미 있는 특종들이 이어지면서 제보가 많아지고 여기서 다시 특종이 나오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단독 보도가 많아지니 뉴스도 차별화된다. 정윤섭 KBS 사회2부 기획팀장은 “지상파와 JTBC 등 방송 4사가 각자의 콘텐츠로 경쟁하는 판이 만들어진 것 같다”며 “보도에 대해 반응이 있으니 고무적이고, 내부에서도 더 다양한 걸 시도해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당장 1~2년 전과만 비교해도 괄목할만한 변화다. 2년 전 세상을 뒤흔든 ‘최순실 게이트’ 때 지상파 뉴스는 존재감을 잃었다. ‘모든 제보가 JTBC로 몰린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고, 실제로 JTBC는 각종 조사에서 신뢰도와 영향력 선두에 올라섰다.


JTBC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하지만 올해 JTBC의 기자상 수상은 단 3건으로 지난해(7건)의 절반 수준이다. 언론사 한 중견기자는 “JTBC 뉴스룸이 올 들어 상대적으로 부진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상파 방송 뉴스의 수준이 높아진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지상파 기자들은 여전히 “멀었다”고 말한다. 수상 실적이나 시청률 같은 지표보다 시청자(독자)가 보여주는 반응과 신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SBS의 한 기자는 “전에는 한없이 막막했다면 이젠 하면 되겠다는 게 보인다”면서 “일반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면 아직 더 노력하고 신뢰를 쌓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좋은 보도를 계속 하면 알아주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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