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받으며 '세상 구경'하던 기자… 돈 내고 세계일주

[기자 그 후] (9) 김하영 이야기경영연구소 편집장 (전 프레시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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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이야기경영연구소 편집장은 프레시안 기자 생활을 12년 만에 정리하고 지난 2014년 7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년 2개월간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녔다. 아시아에서 유럽을 거쳐 남미로 넘어간 부부는 중고 자동차를 구입해 남미 전역을 돌고 미국을 횡단해 알래스카까지 여행했다.

▲김하영 이야기경영연구소 편집장은 프레시안 기자 생활을 12년 만에 정리하고 지난 2014년 7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년 2개월간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녔다. 아시아에서 유럽을 거쳐 남미로 넘어간 부부는 중고 자동차를 구입해 남미 전역을 돌고 미국을 횡단해 알래스카까지 여행했다.


“기자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니? 돈 받고 세상 구경하잖아.”


처음 프레시안에 입사했을 때 편집국장이 한 말이었다. 정말 그랬다. 처음엔 기자 일이 마냥 재미있었다. 법정에 가서 재판을 보고, 국회에 가고, 평택과 새만금 등 다양한 현장을 누비며 세상 구경을 실컷 했다. 하지만 기자 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 피로감이 커졌다. “기자들은 사회 이슈의 최전선,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10년 이상 계속 총질하는 걸 옆에서 보다보니까 지친 거죠. 세상이 돌고 돌아 제자리인 것 같기도 했고요. ‘돈 받고 세상 구경은 못하지만 내 돈 내고 다른 세상을 구경하자’ 싶어 과감하게 그만 뒀습니다.”


그때만 해도 “잠시 쉬는 거”라 여겼다.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어차피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며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여행이 끝난 뒤엔 원래 자리로 ‘뿅’ 하고 돌아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2개월간의 여행을 마친 뒤 그의 자리와 그의 자리에서 본 세상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21세기 열하일기를 쓸 기세로 세계를 돌아다닌 전직 기자’ 김하영 이야기경영연구소 편집장 이야기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음직한 세계여행의 로망. 그러나 로망과 현실은 전혀 달랐다. 2014년 7월 첫 여행지였던 중국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려던 계획이 엎어진 것을 시작으로 여행 내내 많은 변수가 출몰했다. 계획을 세워도 현지에서 바뀌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동쪽이든 서쪽이든 방향만 정해놓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쪽을 택했다. 여행기는 풀어놓자면 끝이 없다. 동남아에서 유럽을 거쳐 남미로, 북미로, 예정보다 2개월 넘게 여행하며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다 헤아릴 수나 있을까. 더 많은 세상을 만날수록 그가 아는 세상도 커졌다. “내가 그동안 전부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사실은 굉장히 좁은 것이었구나, 내 시야가 좁았구나 하는 깨달음의 연속이었죠.”


장기여행은 교통편과 숙소, 먹거리 등 모든 것을 현지에서 해결해야 한다. “살기 위해” 공부해야 했고, 그러니 쉴 틈이 없었다. 여행 기간 체중이 17킬로나 빠졌으니 말 다했다. 몇 번이나 때려치울까 생각도 했다.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특히 그랬다. 칠레에서 현대자동차의 2000년식 갤로퍼를 중고로 구입해 남미를 여행하고 미국을 횡단해 알래스카 북극해까지 여행하는데 틈만 나면 차가 말썽을 일으켰다. 허허벌판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다시 그를 일으킨 것은 ‘사람들’이었다. 차가 고장 나 멈춰서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쳐줬다. 그냥 지나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손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자동차를 고쳐주고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했다.


그렇게 많은 친절과 도움을 받으며 여행을 하고 서울에 돌아오니 적응이 안 됐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쁘고 사납게 느껴졌다. 몇 달을 멍하니 보내고서야 밥벌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다시 기자를 하고 싶진 않았다. “돌아가면 어떻게 살지 잘 아니까, 못 돌아가겠더라고요.”


마침 프레시안 경영 대표를 하던 선배의 제안으로 이야기경영연구소에 편집장으로 합류했다. 지역에 숨어 있는 가치들을 발굴해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게 그의 일이다.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 시야가 너무 좁았다는 거예요. 세상은 넓고 다양하게 얽혀 있는데 현안에만 갇혀서 소모적이었던 거죠. 그런데 사실은 한국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서울에 갇혀 있는 거거든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동안 소홀했던 지방의 많은 이야기, 지역에 숨어 있는 가치들을 발굴해서 도시 사람들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쓸 때가 있는데,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한 ‘몸의 반응’에 놀라곤 한다. “인터뷰하고, 녹취 풀어 기사 쓰고. 몸이 기억하는 거예요, ‘기자질’을. 10년 넘게 한 일이니 당연한 거죠.” 그래서 새로운 일을 해보려 했다가도 “잘할 수 있는 걸 잘하자”며 접었다. 그게 제일 쉽고 재미있어서다. “그냥 잘하던 일을 하려고요. 세상 구경하고 글 쓰고, 이걸 좀 더 잘 해보려고 합니다.”


여행을 다녀온 지도 벌써 3년. 아내와는 10년 뒤 그때 갔던 길을 똑같이 가보자고 얘기한다. 사람들에게도 세계일주나 장기여행을 적극 권한다.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뭔가 변화를 원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것 같아요. 꼭 세계일주가 아니어도 장기여행을 권하고 싶어요.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서 다시 야생에 들어가는 느낌이거든요. 안 쓰는 근육이 발달하고 두뇌도 안 쓰던 부분이 활성화 되면서 많은 생각들이 생길 겁니다. 기자를 했던 분들이라면 재미있을 거예요. 저랑 아마 같은 것들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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