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노조포비아'

[컴퓨터를 켜며] 김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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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기자협회보 기자.

▲김고은 기자협회보 기자.

‘박원순 취임 후…해고된 서울교통공사 민노총간부 30명 복직’


지난달 19일자 조선일보 3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는 현재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보로 드러나 삭제됐기 때문이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을 인용해 “서울교통공사의 민노총 소속 전 노조 간부의 아들이 세습 고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조선이 특정한 전 노조 위원장 김모씨의 아들은 교통공사에 입사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에 거론된 전직 노조 간부는 한국노총 산하 도시철도노조 위원장 출신인 현직 교통공사 1급 간부였다. 조선은 다음날 정정보도를 내고 김 전 위원장과 독자에게 사과했다.


당사자 확인 등 취재의 ABC만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 ‘노조’, ‘위원장’이라는 단어에 ‘고용세습’, ‘부정/비리/특혜’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억지로 부여하려다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한 무리수를 두었다”고 비판했다.


단순 억측은 아니다. 조선일보를 보면 민주노총(노조)은 채용비리와 적폐의 온상쯤 되는 것 같다. 조선은 교통공사의 친인척 특혜 채용 의혹을 정부-서울시-노조의 “합작 비리”로 단정하고 공공기관 정규직화를 “노조 음서제”로 매도한다. “정규직 전환 직원 가운데 일부는 민노총이 노조를 강화하려고 기획 입사시킨 사람”이라는 둥 제기된 의혹은 무성한데 근거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반론조차 찾기 힘들다. 단편적인 사실과 의혹들이 ‘채용비리’ 프레임을 거치며 노조에 대한 거대한 분노와 증오를 추동한다. “이 비정상적 권력이 결국은 우리 사회에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경고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주요 정치인 등이 개입된 강원랜드 채용비리 당시 소극적이었던 보도 태도와 비교하면 ‘노조 혐오’는 심증을 넘어선다.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다른 기사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은 지난달 26일자 ‘MBC, 간부가 평사원의 2배’라는 기사에서 “(MBC의) 고위간부 전원이 노조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MBC측 설명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까지 단일노조 체제를 유지했고, 노조 가입률은 90% 안팎이었다고 하니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선 기사에서 이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달 29일자 ‘민노총 지휘 받는 네이버 노조, 요구사항만 124가지’라는 기사 역시 노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냈다. 조선은 네이버, 넥슨, 카카오 등 최근 IT업계에서 설립된 노조들이 모두 민주노총 소속이란 점을 지적하며 산별노조의 개입이나 연대 투쟁을 우려했다. “과도한 노조 활동이 IT 기업 특유의 역동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거들 뿐이다.


언론의 비판과 감시에는 어떤 성역도 없어야 하며, 노조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채용비리는 일벌백계하고, 노조의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면 그 역시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의혹만 부풀려 대중의 분노를 선동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노조의 합법적인 활동까지 색안경을 끼고 봐서도 안 된다. 노동3권은 언론자유와 마찬가지로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다. 조선일보에도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조가 있고, 기자와 간부 대부분이 노조원이었거나 지금도 노조원일 것이다. 노조를 생떼만 쓰는 이기적인 집단이 아니라 기업 공동의 운명체이자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혐오와 소통은 양립할 수 없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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