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비리 보도, MBC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해묵은 비리 집중해부… MBC 김현경·이해인·박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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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정치팀(왼쪽부터 이해인, 김현경, 박소희 기자)은 지난달 11일부터 총 16편 이상의 연속 보도로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수면 위로 끌어내 정책 변화를 이끌었다.

▲MBC 정치팀(왼쪽부터 이해인, 김현경, 박소희 기자)은 지난달 11일부터 총 16편 이상의 연속 보도로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수면 위로 끌어내 정책 변화를 이끌었다.


사립유치원의 비리는 숱한 외압 속에서 묻히는 듯 했다. 침묵을 깬 건 언론이었다. 지난달 11일 MBC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된 유치원 명단 1146곳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감사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MBC는 단발적 보도에 그치지 않고 유치원 현장과 감사관, 시민단체, 학부모 등의 이야기를 16편에 거쳐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관심 밖에 머물러있던 국공립 유치원 조기 확대와 사립유치원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 등을 담은 ‘유치원 공공성 강화 종합대책’이 진척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수년 간 포기하지 않은 엄마들과 시도교육청의 감사관, 국회의원 그리고 MBC 기자들의 용기가 모여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기자협회보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MBC 정치팀 김현경·이해인·박소희 기자를 만났다.

-사립유치원을 다루게 된 계기는.
“지난해 12월 보도국에 돌아와 기사를 읽다가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 단체가 하고 있는 여러 일 중에 비리 유치원과 어린이집 명단 공개 소송이 있었다. 사립학교법이 워낙 느슨해서 문제가 많다는 건 이미 업계에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 단체의 장하나 대표에게 출연을 요청했고, 감사 보고서 명단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작업을 준비하게 됐다. 이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협업으로 우여곡절 끝에 첫 보도를 하게 됐다.”(김현경)

-이슈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나.
“감사 명단을 받아보고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파장이 클지는 몰랐다. 첫 보도가 목요일에 나갔는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MBC 홈피’ ‘MBC’가 오르더라. 다음날 아침 회의 때 클릭수가 30만뷰 정도 됐었는데 그날 뉴스데스크 나갈 때 100만뷰를 넘겼다. 그 다음주 월요일에 조간과 방송사들도 일제히 받아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000만뷰 가까이 나온 걸로 알고 있다.”(이해인)


-문건을 입수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함께 작업을 할 의원실을 찾기 어려웠다. ‘의원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든가 ‘한유총이 무섭다. 줄 수 없다’는 등 눈치를 보는 곳이 많았다. 고민 끝에 초선급 의원 중에 할 만한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고, 박용진 의원실에서 적극 하겠다고 하면서 시작하게 됐다. 전국 17곳 시도교육청에 자료를 요청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며 안주는 곳도 있고, 부실하게 주는 곳도 있었다. 수차례 요청을 거듭하면서 문건을 받을 수 있었다.”(박소희)

-명단 공개에 부담이 상당했을 것 같다.
“100% 소송이 걸린다고 하더라. 미리 법률 자문도 받고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 걸 알기 때문에 후배에게 하라고 하기 조심스러웠다. 소송이 들어오면 오롯이 그 몫을 취재기자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자발적인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후배 박소희 기자가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해서 고마웠다. 용기와 의지가 모여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이해인)

-그럼에도 공개를 결정한 이유는.
“비리 내용은 이미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였다. 문제는 명단 공개였다. 보도 후에 제보가 많이 온건 실명 공개의 힘이 컸을 것이다.”(김현경)

-MBC 정상화 이후 나온 의미있는 보도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난생 처음 언론에 메일을 보낸다는 교사나 학부모들이 있었고 계속 관심 가져달라고 하는 분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좋은 친구 MBC’란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박소희)
“MBC에 대해서 좋은 댓글이 달리니 느낌이 이상했다. 후배들은 그동안 출입처 나가면서 그런 경험이 없지 않나. 몇 년 간 의미 있는 보도나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특종이 거의 없었다. 보도국 전체가 기뻐했다. 그게 굉장히 보람되고 패배의 기억으로 힘들어한 후배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뜻 깊었다.”(김현경)

-내부에서도 힘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내부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 첫 보도가 나가기 전 국장과 편집부가 굉장히 좋은 아이템이라면서 격려해줬다. 10분 이상 할애해 톱으로 나갈 수 있던 이유다. 다른 부서에서도 ‘우리가 도와줄 거 없냐’며 적극적으로 도와줘 보도가 나갈 수 있었다. 예전처럼 우리가 뭔가를 해나가는 느낌, 조직 내부에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힘을 아주 오랜만에 느꼈다.”(이해인)
“각자가 맡은 영역에서 프로들이라, 취재든 촬영이든 편집이든 CG 등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게 MBC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사도 취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협업 끝에 나온 결과다.”(박소희)

-후속 보도 계속할 생각이신가. 앞으로 계획은.
“중요한건 입법의 문제다. 이슈가 터지면 법안들이 많이 나왔다가 잠시 신경 안 쓰면 상임위에 처박히는 경우가 많지 않나. 유치원의 새로운 비리를 터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재발되지 않도록 입법을 통해서 제도적으로 어떻게 막아내는 지 점검할 계획이다.”
(이해인) “그동안 비리에 대해서 알면서도 기득권들의 반발 때문에 못해왔다. 지금은 보도 때문에 동력이 생겼다.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겼으니까 우리에게는 잘 감시하는 일이 남았다.”(김현경)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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