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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차별 보도와 결별하자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2018.11.07 15:48:03

세계경제포럼이 2017년 발표한 한국의 성 격차지수는 144개 나라 중 118위였다. 정치와 교육, 고용, 보건 4개 분야에서 남녀의 불평등을 계량화한 지표인데, 매년 100위 밖에 머물렀다. 유엔개발계획이 2015년 조사한 성 불평등지수와 좀 다른 결과다. 생식건강·여성권한·노동참여 등 3개 분야를 측정했는데, 한국은 조사대상 188개 나라 중 10위를 차지했다. 측정기준이 다른 데서 오는 순위치고는 차이가 많이 났다. 여성과 남성이 체감하는 불평등 격차만큼 크다. 통계를 떠나 여성이 의회 진출과 취업·승진 등에서 남성에 비해 차별받고 있는 현실은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유리천장이 두텁다. 차별은 언론이 쓰는 용어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최근 연합뉴스가 여성 차별적인 기사표기 관행을 바꾸기로 약속한 것은 그래서 더 박수 받을 일이다. 기사 작성 시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남녀를 모두 표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맥락상 성별이 필요할 경우엔 남녀 모두를 동일하게 쓰기로 했다. 수십 년 된 관행이 여성차별적일 뿐 아니라 ‘남성이 표준’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성차별 해소에 나선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많은 언론사가 성차별적 기사작법을 고수하고 있다. 관용적으로 쓰는 ‘남녀’, ‘자녀’, ‘신랑신부’, ‘학부형’, ‘형제애’ 등이 있다. 호명 순서가 성차별적인 경우다. 불필요하게 성별을 강조하는 ‘여직원’, ‘여교사’, ‘여대생’도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은 예외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차별언어다. 전통적 성 역할을 강조하는 표현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내조외교’, ‘현모양처’, ‘집사람’이란 용어는 기사와 제목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성소수자를 비하하거나 편견을 강화하는 관행 역시 뿌리 깊다. ‘동성애’란 바른 표현을 놔두고 굳이 ‘동성연애’를 쓰고, 동성애를 성 정체성이 아닌 성적 취향의 문제로 바라보는 식이다. 또 동성애자가 성 정체성을 당당히 밝히는 ‘커밍아웃’을 아무 때나 갖다 붙여 쓰기도 한다. 숨겨진 사실이나 범죄를 고백하는 경우까지 무분별하게 사용한다. 부정적 단어와 함께 써 혐오를 일부러 조장하는 일도 잦다. ‘충격, 경악, 파문’을 뒤에 붙여 왜곡된 시선을 부채질한다. 다름과 차이가 차별로 작용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언론이 되레 차별을 공고히 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올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의 하나는 ‘미투’였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핵심이었지만 그 뿌리엔 성 차별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사건들이었다. 미투 운동은 최근 학교로까지 번지고 있다. 학교 내 성폭력과 여성 혐오를 고발하는 ‘스쿨 미투’가 심상치 않다. 계속 이어지는 혜화역 시위는 법의 잣대가 형평성을 잃었다는 외침이었지만, 오랫동안 겪어왔던 불평등을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인권선언으로 봐야 한다.


언론은 많은 부분에서 혁신의 선두에 서 왔지만, 성 차별을 깨는 데 더뎠다. 타성에 젖어 성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적 편견을 깨는 데 게을렀다. 시민들의 인권의식이 성장하고 있다. 언론이 앞장서 성 불평등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 언론사 내부의 관료적 모습부터 벗어던지고 성 평등지수를 높여야 한다. 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가 제정한 인권보도 준칙 제4장은 이렇다. “언론은 성별과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성 차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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