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기자는 왜 남북회담을 취재하러 갈 수 없었나

풀기자인데… 통일부, 남북고위급회담 취재 출발 1시간 전 배제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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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남북고위급회담 장소인 판문점으로 출발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남북고위급회담 장소인 판문점으로 출발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통일부가 탈북민 기자의 남북회담 취재를 일방적으로 불허해 언론자유 침해 논란이 뜨겁다. 자유한국당 일각에선 ‘장관 사퇴’ 주장까지 나올 정도로 정치권 쟁점으로 비화되는 조짐이다.


통일부는 지난 15일 판문점 우리 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의 공동 취재를 위해 구성된 풀취재단에서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를 일방적으로 배제했다. 통일부는 이날 회담 장소로 떠나기 약 1시간 전 김 기자와 통일부 기자단 간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선일보에서 풀 기자를 다른 기자로 바꾸지 않으면 김 기자를 공동취재단에서 제외한다”고 통보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판문점이라는 상황, 남북고위급회담의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한 판단”이라며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동취재단 구성과 풀 기자 선정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기자단과 해당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온 일이다. 정부가 나서서 특정 기자를 배제하거나 기자단 구성에 간섭한 일은 전례가 없다. 특히 이번 회담은 판문점 우리 측 지역에서 열렸기 때문에 북측에 취재진 명단을 통보할 필요도 없었다. 통일부 역시 “북측의 요구는 없었으며,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통일부는 협소한 회담장에서 탈북민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김 기자가 북측 관계자와 마주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이 이날 회담 종료 뒤 가진 브리핑에서 “원만한 고위급회담 진행을 위해 불가피한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취지로 해석된다.



통일부는 회담 전날부터 김 기자의 남북회담 취재에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가 지난 14일 김 기자에게 탈북 시기를 묻고 북측에서 알아볼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하는가 하면, 기자단 간사를 통해 조선일보의 풀 기자 변경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자단은 앞서 지난 12일 정해진 순번에 따라 조선일보를 포함한 4개 언론사로 공동취재단을 구성했다. 조선일보는 통일부 ‘2진’인 김 기자를 보내기로 했다. 2013년부터 통일부를 출입해온 김 기자는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찾은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 일행 풀 취재를 맡기도 했다.


김 기자는 “평창 올림픽으로 ‘통과의례’를 치렀다고 생각했고, 물리적으로도 다른 기자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풀 기자단 단톡방에서 관련 정보와 공지사항 등을 계속 받고 있었기 때문에 취재를 가는 게 기정사실이었고,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눈치를 주고 배제하기 시작하면 나는 다음 풀에서도 배제될 게 뻔하고 기자로서도 반쪽짜리가 되어 버릴 것”이라며 “개인의 인격을 말살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조선일보도 발끈했다. 조선은 16일 ‘정부, 탈북민의 국민 권리와 언론 자유 원칙 다 버렸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 눈치 살피는 정도가 거의 ‘심기 경호’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1면과 2면에도 관련 기사를 실어 ‘언론 자유 침해’라는 점을 부각했다. ‘김 기자의 풀 기자 교체를 조선일보에 요구했으나 협조를 받지 못했다’는 통일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취재 기자로 누구를 보낼지는 전적으로 언론사 결정 사항”이라고 반박했다. 또 “당장 김 기자는 이번 풀 기자단에서 빠지면서 다음 행사 때도 풀 기자단 1순위 순번을 받게 된다. 통일부 뜻대로라면 ‘탈북민 출신 기자의 취재 배제’가 또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부 기자단도 “취재 제한은 부당하다”며 집단 반발했다. 기자단은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통일부가 사전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김 기자를 제외한 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며 조 장관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기자단은 “통일부는 탈북민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야 할 부처인데,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차별을 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며 이 같이 밝혔다. 성명에는 통일부 출입 50개 언론사 기자 77명 가운데 49개사 76명이 동참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출발에 임박해서 같이 가지 못한다는 통보를 한 방식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불씨를 남겼다.


한편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통일부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반헌법적 처분을 바로 잡으라”고 요구했고, 나경원·박대출 한국당 의원 등은 조 장관의 사퇴 또는 해임을 주장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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