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마지막 밤… 기자들 농담하던 '두 정상 백두산 친교' 현실로

[평양 남북정상회담 방북취재기] 이상헌 연합뉴스 정치부 기자

“제발 노동당 청사로 빨리 좀 가주세요. 두 정상이 만나는 시간보다 늦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보시라고요. 상부 지시가 있어야 가지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권력의 심장부인 노동당 본청에서의 평양 정상회담 첫 회동을 앞둔 9월 18일 오후 3시 20분. 펜·사진·영상기자로 짜인 남측 취재진을 태운 미니버스에서 때 아닌 고성이 오갔다. 취재진이 문 대통령보다 먼저 노동당사에 대기해야 했지만, 예정 시간을 10분도 안 남겨 놓고서도 우리를 태운 북측 차량은 꿈쩍하지 않았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첫날인 지난달 18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에 서명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는 이상헌 기자(맨 오른쪽).

▲평양 남북정상회담 첫날인 지난달 18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에 서명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는 이상헌 기자(맨 오른쪽).


안내를 맡은 북측 선탑자는 “어디로 가라는 얘기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느긋해 했다. 속이 타들어 갔다. 버스에 있던 청와대 관계자가 “당신 소속이 어딥니까. 문제 삼겠습니다”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 그 선탑자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차량은 노동당 청사로 쌩쌩 내달렸다. 이미 약속 시간을 훌쩍 넘긴 뒤였다. 그런데 이게 뭔가. 문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청사 밖에 서 있었다. 남측 취재진 차량이 늦다는 소식을 들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한 결례를 무릅쓰고 취재진을 기다려준 셈이었다. 저 멀리 청사 현관에는 김 위원장이 미리 나와 서 있었다. 아찔했다. 선탑자가 그리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우리 버스를 본 대통령 차량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취재진은 도중에 내려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문 대통령은 현관에 도착하고서도 남측 취재진이 보일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기다려줬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현관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그 ‘선탑자’에게 한참을 얘기하고 있었다. ‘깨고 있던’ 것인지는 멀어서 알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선탑자’는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이라고 했다.


그런 장면을 뒤로하고 남북 정상의 노동당 본청에서의 조우는 역사에 기록됐다. 사실 노동당 회담도 펜풀 취재가 예정에 없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 총간사 자격으로 정부 선발대와 함께 16일 평양에 먼저 도착한 필자는 전날 밤까지 막중한 임무를 띤 16명의 풀기자 현장 취재 순서를 모두 짜놓았다. 모든 풀 기사의 데스킹 책임을 맡았던 필자는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현장 취재 명단에서 뺀 상태였지만, 청와대는 급작스레 생긴 정상회담 풀 취재를 직접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남측 프레스센터가 있던 고려호텔 로비에 선 이상헌 기자.

▲남측 프레스센터가 있던 고려호텔 로비에 선 이상헌 기자.


4박 5일간의 평양 체류 동안 유일하게 프레스센터가 있던 고려호텔 밖으로의 ‘외출’이었지만, 그렇게 필자는 노동당 본청을 처음 출입한 남측 기자가 됐다.


여담이지만 노동당 본청을 가기 위해 문 대통령이 묵었던 백화원 초대소에 취재진이 잠시 대기하면서 본 풍경 하나. 초대소 로비에 런던, 모스크바, 베이징, 평양, 앵커리지, LA, 뉴욕, 리우데자네이루 이렇게 세계 도시 8개의 시간을 표시한 시계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3개가 미국 도시였다. 비록 북미 간 해빙 기류가 흐르는 와중이었지만 ‘적성국이라도 미국은 북한에도 주요국인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을 앞둔 19일 고려호텔 프레스센터에는 또 다른 큼지막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0일 백두산을 함께 찾는다는 것이었다. 취재진끼리 농담으로 얘기했던 ‘백두산 친교’가 현실이 됐다.


그런데 삼지연 공항 활주로가 짧아 대통령 전용기가 이착륙할 수 없어 일부만 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방북단 모두 가기로 했고 고려항공까지 동원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벽 출발을 위해 밤을 꼬박 새워야 했지만, 북한 땅을 거쳐 백두산을 가는 특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북한과 미국이 주인공인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이끌고 밀어주는 중재자이자 촉진자 역할을 다하고 또 평양선언을 도출하면서 그런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편에서 보여준 남북 정상의 평양시내 카퍼레이드, 대한민국 정상의 15만 군중 앞에서의 연설과 대동강 수산물 식당에서 평양 시민과 어우러진 식사 등은 60년을 넘긴 남북의 이질감도 떨쳐낼 수 있겠다는 생각의 공간을 넓힌 장면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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