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지만 말 못했던 디지털 혁신의 걸림돌… 기자 중심 조직

'개발·영상·편집' 강화 외치지만, 정작 주역인 비기자직 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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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에서 영상 업무를 담당하다 퇴사한 A씨는 재직 당시 “기자들이 깔봤다”고 말했다. 카드뉴스 제작과 영상 콘텐츠 기획·편집을 맡았던 그는 “퇴사할 때까지 인사도 안 받는 기자 선배, 어차피 돈은 기사에서 나오는데 취재에 노력을 쏟으면 되지 영상해서 뭐 할 거냐는 선배도 있었다”고 했다. 회사에선 일이 있으면 기자들에게만 공지했다. 기자와 동일 수준의 교통비 등을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다. 기자들 반응이 부정적이란 말이 들렸다. A씨는 “인력? 투자? 기자들 마인드 개선이 제일 시급하다. 발언권도 세고 머릿 수도 많고 낄 틈이 없다. 왜 그런 대우를 받고 조직에 있겠나”라고 했다.


최근 4~5년 새 불어온 디지털 혁신 바람과 함께 언론사에 부쩍 늘어난 인력들이 있다. 편집·보도국은 물론 언론사 곳곳에 자리한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영상PD 등이 그들이다. 디지털 퍼스트에 한 뼘만큼의 진전이라도 있었다면 기자들만의 공은 아닐 것이다. 아니 이들의 역량과 공헌 없인 불가능했을 것이다. 디지털과 마주한 언론사는 더 이상 기자만의 조직이 아니다.



반면 디지털 부문 비(非)기자직군에 대한 홀대는 달라지지 않았다. 상호존중과 협업에 기반한 디지털 마인드 부재, 공공연한 차별대우, 기자중심 조직문화 역시 여전하다. 결국 ‘사람 장사’인 언론이 인력 유출을 막고 디지털 경험이란 소중한 자산을 지속 축적하기 위한 조직 차원의 대응이 절실해 보인다.


고민의 수준 차는 있지만 이 문제는 모든 언론사에서 공통적이다. 기자와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간 협업이 활발한 곳조차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기자들이 타 직군을 동등한 자격의 협력대상이 아닌 부수업무 보조자 정도로 본다는 말이 나온다. 방송사 B개발자는 “기자들한텐 참 특이한 능력이 있다. 스페셜리스트를 데려다가 노멀리스트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한번은 부서 인포그래픽 전문가가 내가 구상한 화면을 캡처해 이상한 색을 입혀 보여주면서 ‘쓰신 색이 적록색맹한텐 이렇게 보입니다’라고 하더라. 너무 반가웠다. 자기 고유영역을 말해온 거니까. 그런데 기자 전형적인 마인드는 ‘이거 이 색으로 이렇게 해 주세요’다. 전문가들 고유영역을 인정하되 아이디어를 제안 받고 협업하는 과정에 미숙한 거다.”


회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대우 역시 미숙하긴 마찬가지다. 종합일간지 C개발자는 기자들과 맞물려 콘텐츠 제작에 기여하지만 연수나 교육, 포상 등이 전무하다는 점을 거론했다. 그는 “기자들 고생하는 건 안다. 그런데 사내에서 일주일이나 한 달마다 상도 준다. 우린 그런 거 없다. 서비스를 내놓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쟤 진짜 고생해서 상하나 줬으면 싶은데 그런 제도가 없다. 이러면 기자들한테 감정이 끼기 시작한다. ‘우린 놀아?’ 싶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러 직군과 커뮤니케이션을 제도화하는 등 사람에 대한 관심, 즉 기본을 해줄 필요가 있다. 술 사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않나”라고 했다.


특히 처우 측면에서 이들에 대한 차별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상당수 언론사의 디지털 부문 인력은 여전히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이라 해도 처우는 기자들에 못 미친다. 방송사 디지털 부문 D디자이너는 “팀에 정규직 기자 몇이 있고 나머진 다 프리랜서다. 영상제작자들도 정규직이 거의 없다. 신입 정규직이 아니면 오래 일해도 정규직은 꿈도 못 꾼다. 정규직이 아니면 남으로 여겨지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몇 백 더 주는 건 일도 아닐 텐데 계속 최저시급으로 부리려는 거 같다. 나간다 하면 필요없다는 식이니 발전을 할 수 없다. 새로 오면 가르치는 데 반년 걸리고 반년 후엔 다른 데서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거 같으니 나가는 게 반복된다. 한 명 나가면 연달아 여러명이 나간다. 한 달에 세 명이 나간 적도 있다”고 했다.



일부 언론에선 이들의 처우와 직함, 권리행사 등이 회사 내부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선 디지털직군 내 온라인 기자와 일반 기자직 통합과 처우 차이 개선을 두고 내부 논의가 있었다. 국민일보는 온라인 기자에 대해 1년 근무 후 평가를 거쳐 일반 기자직으로 전환하는 문턱을 낮추는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세계일보는 닷컴으로 입사한 기자는 물론 PD, 디자이너에게 기자직함을 줬다.


이런 움직임은 현 상태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가깝다. 실제 직군 전환은 임금지급 체계의 변환을 뜻하기에 ‘돈 문제’로 이어진다. 이는 경력입사인지 신입공채 출신인지 등에 따른 대우차와 맞물려 언론사에 자리 잡아 있는 기수문화, 내부 사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예컨대 모 신문사에선 지난해 영상기자를 최초로 공개채용 해 뽑았는데 같은 부서에서 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 선배 PD들보다 후배 기자의 직무수당이 더 높다. 기자라서다.


종합일간지 디지털 부문 E씨는 “어찌됐든 아직은 회사에서 소수다. 금액 차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얘길 하기가 쉽지 않다. 콘텐츠 만드는 데 욕심이 클수록 상처를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일부 선배들이 기자직군을 줘야한다는 식의 얘기도 하는데 난 애초 베이스가 다른 사람이다. 다만 후배들은 기자로 뽑았으면 한다. 너무 외로울 거라는 걸 안다”고 했다.


아울러 비기자직군이 뉴스룸 내에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에 편집·보도국장 임명동의투표 등 여러 제도에 대한 권리행사도 변화가 예상된다. 서울신문의 경우 온라인뉴스국이 조직개편과 함께 편집국에 통합되면서 소속 온라인 기자들이 편집국장 임명동의투표에 참여했다. IT부서 개발 인력들까지 투표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기자들과의 업무 접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현 환경은 앞으로 이 같은 권리행사에 어느 선까지 참석해야하는지 논의를 요구한다.


현재 모든 언론사에는 디지털 인력이 존재하기에 이들에 대한 온당한 대우는 향후 몇 년 간 언론사 내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직구성의 측면에서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 등이 콘텐츠 생산과 직접적으로 관련해 디지털 인력을 배치한 방식은 크게 세 가지 형태다. △편집·보도국 등 산하에 두고 온라인 콘텐츠 생산 및 오프라인 협업을 도모하는 경우(경향, 국민, 동아, 중앙, 서울, 세계, 한겨레, 한국, KBS) △본사와 계열사를 나눠 온·오프라인 콘텐츠 생산 및 유통을 아예 분리한 경우(조선) △본사와 디지털 부문 자회사를 분리하되 각자 별도의 콘텐츠 생산과 유통권한을 갖는 경우(SBS) 등의 유형이다.


언론사에 따라 조직 내 편제와 디지털 부문에 기여하는 방식이 달라 일괄적으로 규모를 산정하긴 어려움이 따른다. 다만 종합 일간지에서 기자와 결합해 직접적으로 콘텐츠 생산에 기여하는 인력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PD 등 직군을 합쳐 보통 10~20명 내외다. 중앙일보 디지털국은 기자인력 10여명을 포함 약 100여명의 규모다.


규모 차이에서 드러나듯 언론사별 디지털 역량차는 꽤 크다. 일부 언론사는 여러 직군 간 유기적인 협업이 자리잡은 반면 “아무리 요구해도 편집국에 개발자 하나 붙여주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자들과의 물리적인 공존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거시적인 디지털 전략에 따른 배치와 운영이 담보되지 않고선 아무 소득이 없을 것이란 제언도 있다. 종합일간지 C개발자는 “정치부에 개발자 갖다놓고 뭘 어떻게 쓸 건가. 그냥 ‘그거 좀 검색해줘’ 이렇게밖에 안 된다. 개발 쪽은 서버와 백단, 모바일이 다 기술적으로 엮여있다. 컨트롤 타워 없이는 엉망진창이 된다”고 했다. 또 “각 부서 입장에선 하나의 요구지만 디지털 부서에선 카운터파트가 수십 곳이다. 믿어주면서 오해가 생기지 않게 잘 교통정리해주는 게 어쩌면 투자보다 더 중요한 걸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2014년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 유출 이후 ‘유통’과 ‘콘텐츠 생산’으로 나뉠 수 있는 디지털 혁신의 갈래에서 대부분 언론은 유통에 관심을 쏟았다. 포털 등 플랫폼과 구분한 언론사만의 장점은 ‘콘텐츠 생산’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략으로서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전략부재로서의 선택이었다. 싼값에 인력을 데려와 부려먹은 후 유효기간이 지나면 내치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우리 언론은 얼마나 디지털 경험을 내재화한 것일까. B개발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사 경쟁 개념이 아니라 디지털 분야 전문가 인력 한 분 한 분이 되게 소중하다. 우린 그런 인력 생태계가 없다. 농사지을 사람이 씨를 안 뿌렸으니까. 의욕을 갖고 왔다 욕하며 등 돌리는 분도 나온다. 동등한 관계설정도 안되고 후반작업 해주는 식으로만 보니까. 정규직화 하려고 자회사로 보낸다고? 디지털하겠다면서 그 비용은 지불 못하겠다는 거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최승영·강아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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