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양성평등 위반, 작년 0건 올해는 32건

미투 운동 8개월… 올해 방심위 양성평등 제재안건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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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한 데 이어 사회 전반적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된 지 벌써 8개월째 접어들었다. 연예 드라마뿐만 아니라 뉴스나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성차별적인 방송 보도에는 변화가 있었을까.


기자협회보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뢰해 지난 1월부터 8월 말까지 제재 안건을 살펴본 결과, 전체 703건의 제재 가운데 32건이 ‘양성평등’을 위반한 사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9건, 2016년 11건, 2017년 0건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난 수치다. 연예 오락 부문뿐만 아니라 보도 부문만 해도 16건에 달한 점이 눈에 띄었다.


방심위 관계자는 “미투 이슈가 불거지고 젠더감수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민원이 늘어났고, 신임 방심위가 이를 중하게 본 영향이 큰 것”으로 판단했다. 과거 방심위가 성평등 위반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비판이 인 데 대해 이번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는 평가다.


지난 4월 방심위는 YTN라디오 ‘곽수종의 뉴스 정면승부’(지난해 9월13일자 방송분)에 대해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진행자와 출연자가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 투수인 류현진 선수와 슈퍼모델 출신의 배지현 MBC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의 결혼설에 대해 설명하던 중 노골적으로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내서다. 당시 진행자는 “추성훈 UFC 선수도 야노시호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류현진 선수도 배지현 슈퍼모델 출신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돈을 따라간거냐 남자의 능력을 따라간거냐” “스포츠 선수들이 미녀들과 결혼하는 건 미녀라고 그런건가” “얼굴만 예쁘면 뭐하냐 마음이 예뻐야 한다” 등을 재차 언급했다.


지난 3월에는 채널A의 ‘뉴스 TOP 10’(지난 2월23일자 방송분)이 방심위로부터 행정제재인 ‘권고’를 받았다. 당시 김아랑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와 관련된 내용을 전하던 중 출연자들이 “여자들한테는 예쁘다는 소리 많이 해주면 훨씬 기분도 좋고, 성적도 좋아질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게 그대로 방송에 노출된 것이다.  


일부 출연자는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서 좋지 않을 여자분이 어디 있겠나” “여성은 공부 잘하는 거, 운동 잘하는 거 아무 소용없다”는 등의 무분별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방심위는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조장할 소지가 있는 내용을 방송한 건 심의규정에 위반된다고 파악했으나, 생방송 중에 진행자가 아닌 출연자들이 발언했다는 점, 문제의 출연자에 대해 자체적으로 출연 정지 조치를 취한 점 등을 고려해 향후 유사한 사안이 재발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행정 제재를 의결했다.


“현송월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 와서는 명품백을 들지라도 평양역에서 김여정이 환송을 나오면 북한 브랜드 가방을 들고 있다가 명품 브랜드로 바꿔서 드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저렇게 역사적인 자리에 등장을 했다? 뭔가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철저하게 계산된 정상국가의 형태를 연출하기 위한 그런 계산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지난 6월 TV조선 ‘뉴스특보’의 진행자는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찾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정상회담이라는 진지한 의제 앞에서 여과 없이 이뤄진 모습이다. 방송사들이 여성과 관련해 보도를 할 때 ‘미투 전담팀’을 만들며 자체 모니터를 강화하는 등 과거보다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미흡한 부분이 많다는 게 언론계의 지적이다.


특히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묘사가 극심한 성차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보도 부문의 양성평등 위반 안건을 보면 성범죄 장면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거나 묘사해 제재를 받은 게 대다수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지난 2월 성폭력 범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삽화를 반복적으로 노출해 ‘권고’를 받았고, ‘종합뉴스7’에서도 지난 3월 집단 성매매 알선 등의 범죄를 다룬 보도에서, 성매매 장면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삽화를 노출해 ‘의견제시’ 제재를 받았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3월 몰래카메라 사진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했던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전하며, 해당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몰카 사진을 노출해 ‘의견제시’를, ‘생방송 오늘아침’은 지난 4월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명목으로 음란 방송을 하는 주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방송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흐림 처리한 장면 등으로 ‘권고’ 조치를 받았다.


지난 6월 온라인을 뒤덮은 <강진 여고생 살인 사건> 기사들만 봐도 우리 언론이 여성에 대해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원조교제’ ‘몸캠’ 등 피해자에 귀책사유가 있는 듯한 발언을 하는 패널을 그대로 출연시키는가 하면, 기사 제목에 ‘알몸 상태로 발견’됨을 강조한 언론사도 적지 않았다. 지난 14일 방심위 방송소위원회 의견진술을 위해 참석한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제작진이 이에 대한 지적에 “저희만 그런 건 아니고 대부분의 방송들이 그렇게 보도했다”고 설명한 것도 눈에 띈다.


방심위는 이날 TV조선에 대해 “온 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한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신중해야 할 진행자가 오히려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질문하고, 이것이 출연진의 자극적 발언으로 이어지는 등 대담 전반에 걸쳐 해당 사건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해 법정제재가 불가피하다”며 ‘주의’ 의견을 다수 의견으로 전체회의에 회부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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