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단독은 다름 아닌 '인사' 기사

말로만 단독, 퇴색된 의미… 진짜 단독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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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은 언론사 간 경쟁의 산물이다. 그 ‘경쟁’이 언론사의 이름과 가치를 드높이고 우리 공동체에 득이 되는 메커니즘이다. 우리가 만일 1800년대 후반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무이했던 근대신문의 기자였다면 경쟁은 불필요했을지 모른다. 쓰기만 하면 단독이 됐을 것이므로. 불행히(?)도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하루 100건에 달하는 단독기사가 쏟아진다. 언론은 함량미달의 기사에 [단독] 표기를 달며 단독의 가치와 당장의 수익을 ‘엿 바꿔먹는’ 중이다. 포털에 종속된 뉴스 유통질서 아래 경쟁은 그렇게 ‘치킨게임’이 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언론 역사 최초의 단독보도와 남발의 실태, 현 뉴스 유통구조 형성 과정을 살펴 단독의 의미를 되새겨 볼 때다.



◇우리나라 최초의 단독보도 그 의미는
1883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가 창간된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를 보면 그해 10월31일 발행된 제1호 1면에는 ‘창간사’인 ‘순보서(旬報序)’를 포함해 총 세 꼭지가 담겼는데 여기 우리나라 최초의 단독인 인사 기사가 있다. 기사는 “8월6일 유지를 받들어 호군(護軍) (관직의) 윤우선을 강원 관찰사에 임명한 것을 삼가 기록한다”고 적고 있다.


같은 면엔 최초 정치 단독도 있다. “동월 8일 좌의정 김병국이 변방의 병사와 수령을 신중히 선택할 것과 새로 주조한 (화폐) 당오전을 널리 퍼뜨려 쓰도록 아뢰니 ‘(왕이) 알았다’고 하였다”는 내용이다. 2면에 담긴 우리나라 최초 사회 단독은 절도사건을 다룬다. 기사는 “동월 10일밤 통상아문(이란 기관)에서 금고에 넣어둔 은원보 20정과 응양 700여 원을 잃어버렸는데 날이 밝은 뒤 도둑 하나를 잡아 은자를 거의 환수했지만 한 명을 잡지 못해 600여원은 회수 못했다”고 했다.


단독보도에 따른 우리나라 최초의 ‘필화’ 사건도 있었다. <한국 언론사>에 따르면 한성순보 1884년 1월30일자 제10호 ‘화병범죄’, 2월10일자 제11호 ‘화병징판’ 기사는 청나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한성 내 한 약방에서 청국 병사들이 약값 시비 끝에 살인까지 이르게 된 사건을 다뤘는데, 지은이 채백 부산대 교수는 “내용상 별 문젯거리가 없어보이지만 창간 이후 한성순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청국으로서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일본인 편집국장이 사임하고 귀국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한성순보 기사를 단독으로 단정하는 데 논란의 여지는 있다. 발행처가 지금으로 치면 공공기관인 ‘박문국’이었기 때문에 보도자료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나라 최초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창간호 1896년 4월7일자 2면에 실린 외신기사가 우리나라 최초 ‘단독’이 된다. 기사는 ‘스페인 속국인 쿠바 백성들이 자주독립운동을 벌이며 스페인 관병과 1년 넘게 싸우고 있는데 미국 의회원에서 이들을 의병으로 알아주자는 의논이 있다’면서 이를 바라보는 영국, 프랑스 등 국가의 입장을 전했다.


근대신문이 나온 초기 시절과 일제 시대에도 언론사 간 ‘경쟁’은 확인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한국대중매체사>에 따르면 1898년 창간된 ‘매일신문’은 동월 4월14일자 논설에서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말 듣지 못하였오”라며 ‘독립신문’을 비판했고, 서로 발행주기까지 의식하며 견제에 나섰다. 1930년대 조선일보는 소설 ‘무정’으로 유명세를 탄 이광수 등 동아일보 기자를 대거 스카우트 하고 이후 상호간 비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현재 단독을 통해 경쟁하는 ‘게임의 룰’과 언론인들의 의식이 언제 명확히 형성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정진석 전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러시아가 우리나라 땅을 달라고 했다는 매일신문의 폭로 기사, 대한매일신보의 호외 두 건,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 같은 걸 최초 특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근래에 와선 약간 빨리 보도하면 특종으로 내세우는데 다른 데선 하지 않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을 용기 있게 보도한 걸로 규정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단독 아닌 단독이 범람하는 시대
시대는 많이 흘렀다. 이젠 포털 사이트에 하루 동안 쏟아지는 단독 기사만 줄잡아 100건에 달한다. 기자협회보가 포털 네이버와 검색 제휴된 전체 언론을 대상으로 8월1일 하루치 단독 기사 수를 조사한 결과 기사 제목에 [단독] 등의 표기를 해 출고된 기사 수는 총 95건으로 나타났다. 특별한 사건이나 사고가 있는 날이 아니었다. 큰 이슈를 중심으로 모이기보다 단 건의 단독이 많은 날이었다.


지난 6개월 간 주류 매체의 단독 기사를 살펴보면 [단독] 남용은 메이저와 마이너 언론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히 확인된다. 지난 2월1일부터 8월1일까지 21개사가 네이버에 출고한 단독 기사 수는 4764개(제목에 [단독]이 포함된 기사)였다. 언론사 한 곳당 내놓은 평균 단독기사 수가 약 227건에 달한다. 1년 치로 단순 환산 시 주류 매체에서만 연간 9500건에 달하는 단독을 내놓는 결과가 된다.


이 기간 가장 많은 단독기사를 내놓은 언론사는 중앙일보(591개)로 전체 단독기사 중 12.4%에 해당했다. 세계일보가 412건으로 2위(8.64%)였고, 매일경제가 374건(7.9%)으로 3위를 차지했다. 이어 MBN(364건·7.64%)과 경향(324건·6.8%), 동아(305건·6.4%)의 순이었다. 가장 적은 단독기사를 낸 언론사는 연합(20건·0.42%)과 JTBC(22건·0.46%)였다. 연합은 통신사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JTBC는 지난 2월 말부터 단독 표기를 하지 않으면서 2월 중 나온 기사만 카운트됐다.


단독보도가 많은 것은 바람직한 일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제목에 [단독]이 들어간 기사가 난무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단독인지 아닌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전적으로 언론사에 달렸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는 부지기수다.


중앙의 지난달 2일 <[단독]강릉 방탄소년단 정류장 가봤더니> 보도는 한 사례다. 지자체가 ‘방탄소년단’의 앨범 재킷에 등장한 촬영지에 버스 정류장을 설치했다는 이 기사에 앞서 같은 정보를 담은 14개 언론의 기사가 포털에 송고됐다. 실제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은 보도들도 다수 있었다. 왜 단독인지 납득이 힘든 기사다. 중앙에선 지난 3월2일 <[단독] 내 뿌리찾기 DNA 테스트 해보니 … 1% 아메리칸 인디언>, 지난 2월21일 <[단독]이윤택 성추문 장소인 밀양연극촌 ‘황토방’ 가봤더니>처럼 기자가 실제 ‘해보거나’ ‘가봐서’ 고생했으니 단독을 붙인다는 인상을 주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인용 보도를 하고서도 [단독]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세계는 지난 5월7일 미국 인터넷매체 액시오스의 뉴스레터를 인용, 국내 보도와 달리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로 판문점이 여전히 가능성 있다는 보도를 전했는데 기사 전체가 인용이면서도 [단독]을 붙였다.


◇포털 탓만 할 수 없어...‘단독’ 가치 복권을 위한 노력 필요
이 같은 행태에서 읽히는 언론의 욕망은 포털 노출과 클릭 수에 대한 집착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장상황에서 가장 큰 뉴스유통 플랫폼인 포털을 통해 최대한 수익을 보전해보려는 의도가 배경으로 존재한다. 실제 포털 네이버에서 [단독] 등의 표기가 자리 잡은 과정을 살펴보면 포털 종속이 심화되며 현 상태가 서서히 자리 잡는 과정이 드러난다.


기사 제목에 ‘[](꺽쇄)’를 넣어 단독을 강조하는 형태는 2000년대 들어 네이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경제신문 2000년 2월16일 <[이용근 금감위장 한경 단독인터뷰]>보도가 최초다. 국민일보도 2002년 8월15일 <[본보 단독입수 문건 ‘파문’] 시점이 수상한 ‘국정홍보 강화’>, 2003년 3월2일 <[강법무 단독 인터뷰] “검찰총장 지휘권 최대보장”>이란 제목을 선보였다.


2003, 2004년은 상당수 주류 매체가 이 같은 포맷에 동참한 해다. 문화일보는 2003년 4월15일 <<盧대통령 단독인터뷰>>형태를 제목에 걸었고, 2004년 경향, 세계, 국민, 노컷, 연합, 서울경제, 헤럴드경제, 헤럴드POP, 머니투데이 등 12개사가 참여하게 된다. 세계는 현재 표준형이 된 [단독]의 형태를 가장 먼저, 또 2000년대 내내 가장 적극적으로 지속해 온 언론사 중 하나다. 이후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주류 종합일간지, 방송사, 경제지, 스포츠지, 인터넷매체 등 총 34개사가 같은 포맷을 사용하며 제목에 [단독]을 쓰는 행태가 상당히 자리를 잡는다.


오세욱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언론의 ‘단독’ 표기 남용은 포털에 종속되는 유통구조의 변화와 당연히 무관치 않다. 2010년대 들어 뉴스캐스트 등 포털이 뉴스정책을 변화할 때마다 언론도 여기 대응해왔고, 당시 ‘충격’, ‘경악’ 등 제목장사를 거쳐 이른 게 현재 단독 형태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일이다. 단독은 언론사가 내세우는 게 아니라 독자가 알아줘야 하는 건데 이면에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에 띄기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 있다. 당장의 수익을 위해 단독의 값어치를 계속 깎아먹는 자충수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독은 점점 시민들과 괴리된 채 언론계만의 가치로 전락하고 있다. 일반시민들이 이 용어에 익숙해질수록 그 값어치는 떨어진다. 당장 언론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독 가치의 복권을 위한 움직임이다. 단독과 특종의 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


단독은 국어사전에 없는 업계 용어가 일상에 자리잡은 독특한 케이스다. 특종(特種)은 사전에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특종을 “<언론> 어떤 특정한 신문사나 잡지사에서만 얻은 중요한 기사”라고 풀이한다. 두산백과사전은 특종기사와 유사한 개념인 ‘scoop’에 대해 “보도기관에서 경쟁사보다 앞서 독점보도하는 특종기사”라고 기재했다. 단독은 현재 특종과 확연히 구분된 형태로 선보인다. 특종이 단독의 부분집합이다. 모든 특종은 단독이지만 모든 단독이 특종은 아니다. 이에 따라 특종의 주요 키워드는 “경쟁사보다 앞서”, “독점보도하는”, “중요한 기사”가 된다. 속보성과 배타성, 중요도가 기준이다.


단독에 대한 언론계의 자성은 보도의 중요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독의 본질은 언론사 간 경쟁이고, 그 경쟁은 저널리즘이란 이정표를 향해야 해서다. 한 인터넷 매체 기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도 거기 적극 편승해온 게 언론인 것도 사실”이라며 “타 회사 동료들 얘길 들어보면 [단독]을 안 붙이면 어색하다고 할 정도인데 나름의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일상을 바꾸지 않는 이상 변화가 생기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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