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앵커에겐 '올드하다'는 지적 잘 안하죠. 여성 앵커는…

17, 18, 27년차 지상파 여성 앵커 3인이 본 언론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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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캡, 첫 여성 부장, 첫 여성 단독 앵커…. 언론계에서 일하는 기자들에게 ‘여성’이라는 꼬리표는 끊임없이 따라붙는다. ‘여성인데도’ 묵직한 자리에 오른 게 아직도 낯선 탓일까. 올해 법조계와 정재계를 중심으로 미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지만 언론계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그만한 이슈가 없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만큼 보수적이어서 이슈 자체가 안 된 거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노골적인 성차별은 없어도 더 음습하고 보이지 않는 압력에 괴로워하는 여성 언론인들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상파 3사에서 뉴스 앵커를 담당하고 있는 고참 여기자들이 지난 7일 서울 프레스센터 한국기자협회에 방문해 아직까지 남아있는 언론계 내부의 성차별 문화에 대해서 인터뷰했다. 왼쪽부터 김수진 MBC 앵커, 이랑 KBS 앵커, 한수진 SBS 앵커.

▲지상파 3사에서 뉴스 앵커를 담당하고 있는 고참 여기자들이 지난 7일 서울 프레스센터 한국기자협회에 방문해 아직까지 남아있는 언론계 내부의 성차별 문화에 대해서 인터뷰했다. 왼쪽부터 김수진 MBC 앵커, 이랑 KBS 앵커, 한수진 SBS 앵커.


특히 여성 앵커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냉혹하다. ‘방송의 꽃’이라는 틀 안에서 젊고 예쁜 여성 앵커만이 살아남는 구조는 여전하다. 옆자리 남성 앵커와 20년 이상의 나이차를 보이는 비정상적인 분위기는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자협회보는 SBS 5시뉴스인 ‘오뉴스’를 맡고 있는 한수진 앵커(27년차), KBS 아침뉴스인 ‘뉴스광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랑 앵커(18년차), MBC 주말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를 책임지고 있는 김수진 앵커(17년차) 등 여성 언론인을 만나 언론계 문화를 극복하기까지 지난한 과정, 변화하고 있는 분위기와 바뀌어야 할 점 등을 물었다.


-상반기에 미투 이슈가 불거지면서 관련 보도도 많이 나왔다. 어떻게 봤나.
한수진=사회적으로도 우리에게도 크게 다가왔다. 언론 내부에서는 뉴스에서 그간 이런 이슈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아이템으로 얼마나 적극적으로 다뤄졌는지에 대한 반성도 나왔다. 우리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는 거에 대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각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관련 아이템을 다룰 때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2차 피해를 조심하기 위해 신중하게 진지한 고민이 있었고 몇 걸음 앞서나가는 계기가 됐다.
이랑=KBS 파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뉴스를 고민하던 시기에 미투가 터지면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미투팀’이 결성됐다. 팀원들 모두가 자원해서 이뤄진 만큼 남성 기자들을 포함해 모두 ‘젠더 감수성’이 발달된 분들로 구성됐다. 예전에는 다소 선정적이더라도 시청률에 도움이 되면 넣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피해 사례를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을 조심해야겠다는 고민부터 해나갔다. 
김수진=미투 보도 나오고 나서 보도국 분위기가 바뀌었다. 남기자든 여기자든 전에는 대수롭기 않게 말했던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한 계기가 됐다. 성별을 떠나 대수롭지 않게 이성 기자에 대해서 외모 평가를 하지 않았나. 이제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이랑=이번에 미투 취재를 하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느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떤 분은 과거에 후배에게 ‘예쁘다’고 생각 없이 말한 게 문제라는 걸 이번 취재를 하면서 느끼고는 당사자를 찾아 사과를 했다더라. 그만큼 취재를 하면서 언론계도 조금씩 변화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언론계 상황은 어떤가. 여성 기자가 예전보다 늘었는데.
한수진=입사할 때가 창사 초기였다. 남자 앵커가 단독으로 뉴스를 진행한 시절이었다. 공채1기에 여기자가 단 한명 뿐이었고 경력직에는 여성이 한명도 없었다. 여성 숙직실도 없었다. 그게 차별이라고 생각할 겨를 없이 조직문화 비슷하게 ‘형님’ ‘형’이라고 불러야했고 지금 생각하면 사회적으로도 젠더라는 인식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젠더 감수성이 남녀 모두 훨씬 뛰어나다. 예전에는 ‘오늘 야 죽인다’ ‘너무 화장이 섹시하게 된 거 아니냐’ 등의 상사의 말을 농담으로 넘겨야 했지만, 지금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분위기 싸해지는 게 현실이다. 나이든 선배들이 그걸 느끼고는 말해놓고 나서 ‘이러면 안되지’ 등 말꼬리를 흐리면서 자기검열을 한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한수진=특파원을 비롯해 주요 출입처에 가고 싶지만 기회가 없어서 못가는 경우가 많다. 내부적으로 앵커 오디션을 하면 여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손을 들지 않는다. ‘지원해서 뭐하나, 어차피 안 되는데’라는 분위기다. 앵커 오디션을 일단 남성 앵커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탓이다. 미국의 보도국장은 3분의2가 여성이라고 들었다. 우리나라 언론계는 아직까지 아쉬움이 더 크다. 언론이 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보수적인 시선으로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것 같아서 아쉽다.
이랑=예전보다 절대적인 수는 늘어났다. 팀장의 반이 여자고 부장도 여자다. 출입처를 가리는 건 아니지만, 여자가 해야 할 일, 남자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구분돼있는 게 사실이다.
김수진=여기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팀장급이 많아졌다. 그런데 한창 일해야 할 여기자들이 주요 출입처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업무 성취욕이 낮아서가 아니다. 그 나이대가 30대 중반이라 육아 때문에 손을 못 드는 것이다. 그렇게 육아 때문에 편집부나 국제부 등 내근 부서에 간 후배들은 현업 부서로 돌아오기 힘들게 되면서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다.

-여성 앵커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김수진=유독 여성 앵커에 대해서만 외모와 나이에 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남자 앵커한테는 올드하다는 지적을 잘 안하지 않나. 젊은 아나운서가 뉴스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계속 있는 것 같다.
이랑=메인뉴스의 경우 대부분 남녀앵커의 나이차가 상당하다. 사실상 아빠와 딸, 삼촌과 조카 뻘이다. 그게 시청자가 원해서인지 내부적인 고정관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되돌아봐야 하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여기자들의 경우에도 근시안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출산과 육아가 있고 나이도 걸리고, 무의식중에 ‘나의 전성기’는 딱 마흔, 입사해서 15년에서 20년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남자들은 정년까지 바라보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한수진=왜 JTBC가 성과를 올리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JTBC는 앵커로서 상당히 견고한 역할을 했고, 그걸 목도한 시청자들의 요구가 있었다. 얼굴 괜찮고 목소리 좋다는 이유만으로 앵커로 써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김수진=여기자에게 육아는 장벽이고 그걸 견디면 나이가 난관으로 다가온다. 앵커로 쓸 만한 경력있는 여기자가 없다고 하는데, 내부서 제대로 키워주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메인뉴스의 단독 앵커는 여성으로, 나이가 매우 많다. 우리 언론도 외모나 나이를 제약으로 둘 게 아니라, 경력이 풍부한 기자들을 내부적으로 키워줄 필요가 있다.

-후배 여기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수진=사실 기자란 일이 지치는 직업이지 않나. 생방송 스트레스가 상당하고 아이템을 다루는데 타사는 어떻게 다루는지 매일 성적표를 받는 기분일 것이다. 지치지 않고 간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일희일비 하지 말고 길게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여러 어려움이 있어도 호흡을 길게 보고 견디면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김수진=후배들에게 나이가 들어도 현장에 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방송기자가 수명이 짧다는 게 조금 연차 쌓이면 남자든 여자든 현장에 나가지 않아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면 좋지 않을까. 조금 길게 보고. 호흡을 길게 하고 갔으면 좋겠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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