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엔 '텅 빈' 지역언론기자실이 있다

[지역언론 리포트] (7) 대전충남·충북

  • 페이스북
  • 트위치

2012년 개청한 정부세종청사 건물이 연동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뉴시스

▲2012년 개청한 정부세종청사 건물이 연동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뉴시스


세종시 다솜로 정부세종컨벤션센터 홍보동엔 ‘지역언론 기자실’이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지시로 지난해 9월 설치된 곳이다. 이 총리는 지역언론 기자들이 정부세종청사 취재와 보도준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이를 마련했다고 한다. 당시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지역언론 기자실 설치는 정부 부처와 지역기자 간 소통의 가교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향후 이용 상황에 따라 확장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1일 직접 찾은 세종청사 지역기자실은 이런 취지와 달리 기대엔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부부처와 따로 떨어진 2층짜리 건물의 지하 1층. 면적 80㎡에 20석 규모, 사무가구, 복합기, TV, 냉난방기, 냉장고까지 갖췄지만 기자들의 발길은 뜸했다.


일간지라면 마감이 한창일 평일 오후 4시였는데도 불이 꺼진 채 텅 비어있었다. 출입일지를 보니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기자실을 오간 지역기자는 6명에 불과했다. 주말을 제외해도 3.7일에 1명씩만 방문한 셈이다.


지역 기자들은 이 공간을 왜 이용하지 않는 걸까. 세종청사를 취재하는 한 충청지역 언론사 기자는 “지역기자실은 정부청사와 분리된 건물인 데다 브리핑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라며 “단순히 기사를 쓸 수 있는 공간일 뿐 취재접근성이 떨어져서 굳이 거기까지 갈 이유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충청 언론사의 기자도 “명색이 세종청사 기자실인데 오며가며 부처 공무원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얻기도 어렵다”며 “이름과 시설만 기자실일 뿐 실제 기자실 역할은 하지 못 한다. 이용가치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충청 언론, 왜 세종에서 영향력 확대하지 못했나
세종청사를 취재하는 지역언론은 대부분 충청언론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부처 기자실엔 출입하지 못한다. 세종청사 정부부처 기자단들은 중앙과 지역 구분 없이 통합해 운영하는데, 충청언론 대다수가 기자단에 속해있지 않아서다. 기자단 가입 사례는 대전일보(5개 부처)와 중도일보(1개 부처) 뿐이다.   충청 기자들은 세종청사 기자단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고 토로했다. 중앙언론사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가입요건 또한 중앙언론에 맞춰져 있어 지역언론이 이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지역 비회원사들은 브리핑이나 간담회에 참석할 수 없고 정보접근성도 떨어져 취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소연했다.


충북지역지 한 기자는 “청와대나 국회엔 별도로 지역기자단이 있는데 통합으로 운영되는 정부청사는 유독 기자단의 벽이 높은 것 같다”며 “중앙언론과 지역언론의 취재인프라 자체가 다르지 않나.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신문협회에 가입한 곳이라면 지역 사정을 조금이라도 반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세종청사를 출입하는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기자단 가입은 투표로 이뤄져 기자들과의 교류가 중요한데 여기서 충청언론 기자들은 자주 보진 못했다”며 “지역기자들도 이쪽까지 와서 취재할 여력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충청 기자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먼저 지역뉴스만 보도하는 데도 빠듯할 만큼 부족한 인력 탓이다. 이들에겐 지역신문 지면에 중앙부처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뤄야하느냐는 고민도 있다. 세종청사에 힘을 쏟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굴기사는커녕 보도자료만 써내다보니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부세종컨벤션센터 홍보동 지하 1층에 자리한 지역언론 기자실. 사무가구, 복합기 등이 갖춰져 있지마나 접근성이 떨어져 기자들의 발길은 뜸하다.

▲정부세종컨벤션센터 홍보동 지하 1층에 자리한 지역언론 기자실. 사무가구, 복합기 등이 갖춰져 있지마나 접근성이 떨어져 기자들의 발길은 뜸하다.


◇“세종청사, 충청언론 생존전략될 것”
충청언론들은 세종청사가 자리한 안방의 이점을 크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2012년 세종청사 개청 이후 세종취재본부를 운영하고 있지만 전담인력은 대전지역지에선 2~3명씩, 청주에 기반을 둔 충북지역지에선 1명씩에 그친다. 그마저도 세종시청에 취재를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세종청사에서 충청언론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최준호 충북일보 세종취재본부장은 “우리에겐 지역뉴스가 중심이고 중앙뉴스는 부차적이어서 다들 세종청사보다 세종시 행정에 주력한다”면서도 “주요 정부부처들이 가까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지역언론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전지역지 한 기자는 “세종청사 개청 당시 충청지역 언론들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 같다”며 “그땐 당연히 지역적 메리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세종취재본부와 인력 운영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고 기자단 가입을 위한 노력도 소홀했다”고 설명했다.


쉽지 않은 여건이지만 세종청사 취재의 필요성을 느끼는 충청 기자들이 많다. 5개 정부부처를 출입하는 대전일보의 조수연 세종주재 기자는 “지리적 장점이 있는데도 인력이 부족해 세종청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중앙의 굵직한 사안과 지역이슈를 연계해 보도하는 방식이 지역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청사에 얼마나 신경 쓰느냐가 충청언론의 생존전략이 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중도일보는 4차례 도전 끝에 지난해 말 국무총리실 기자단에 가입하는 등 본격적인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백운석 중도일보 세종취재본부장은 “여전히 취재에 어려움은 있지만 개청 초기보다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 충청언론의 인지도는 올라간 것 같다”며 “주요 정부부처가 우리지역에 있는 것 자체가 지역언론에는 고무적인 일 아닌가. 먼저 취재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병안 중도일보 세종주재 기자는 정부정책의 큰 흐름을 이해하게 된 것을 세종청사 출입의 장점으로 꼽았다. 임 기자는 “아직 국무총리실 한 곳이지만 정부기관 관계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직접 지역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다”며 “충청언론들이 세종청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도 효과적인 접근법과 구체적인 기사 방향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지역언론 한계 뛰어넘고 지리적 이점 활용해야”
지역 일간지 가운데 큰 규모인 부산일보, 국제신문, 매일신문은 다수의 부처 기자단에 가입해 세종청사 뉴스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이들은 충청 기자들에게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지원 국제신문 기자는 “우리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청사 현안을 챙기기 위해 인력을 빼서 멀리 세종까지 보낸 것”이라며 “충청 언론사들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청사 전담인력을 늘리고, 기자들은 기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면 더 좋은 지역신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청사에 5년째 상주하고 있는 김덕준 부산일보 기자는 지역지라는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중앙부처에서 내놓는 정책들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기울여 보도한다”며 “지역에 적용되는 사안이 아니어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내용이라면 이 역시 보도한다. 정부부처가 발표하는 정책들은 지역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기자는 대다수 지역 언론이 지역화에만 집중하고 있다면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역 뉴스를 상세하게 다루면서도 중앙에서 나온 이야기도 지역기자의 눈으로 심층취재해 보도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신문이 외면 받는 상황인데 다양한 이슈를 다루면서 신문을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청 초기 대전일보의 기자단 가입을 주도했던 곽상훈 대전일보 부장은 기자들의 노력 뿐 아니라 청사에서 정보를 취하는 환경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부장은 “정부부처가 세종에 자리 잡았으니 충청에 기반을 둔 언론이 중앙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늘 말해왔다”며 “기자단 소속사가 아니면 정보를 얻을 기회조차 차단되는 상황이다. 먼저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로 지역 언론에 정보를 공개하고 제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희택 세종포스트 기자도 정부와 기자단, 지역 언론의 발전적인 상호작용을 기대했다. 이 기자는 “대전청사도 초기엔 세종청사 같은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는 통합기자실로 운영되면서 간사는 전국지, 총무는 지역지 기자가 맡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정부부처 자료라도 전국지에선 3매로 쓰이는 기사가 지역지에선 6매로 보도되기도 한다. 정부부처, 기자단, 지역지 모두 윈윈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정부가 세종청사에 지역기자실이 아니라 통합기자실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기서 비주기적으로라도 브리핑을 하는 등 중앙기자와 지역기자, 정부부처가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며 “작은 물꼬부터 트인다면 세종청사도 정부대전청사 모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