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경찰서 붙박이 교육, 이젠 역사 속으로

주 52시간 발맞춰 개선…신문‧방송‧통신사 잇따라 폐지 수순

꼬질꼬질한 운동화에 큼지막한 백팩.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경찰서를 서성거리던 수습기자. 이젠 그 모습과 안녕을 고할 때다. /pixabay

▲꼬질꼬질한 운동화에 큼지막한 백팩.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경찰서를 서성거리던 수습기자. 이젠 그 모습과 안녕을 고할 때다. /pixabay

서울신문 51기 수습기자들은 더 이상 경찰서에서 쪽잠을 자지 않는다. 지난 1일부터 아침에 출근해 저녁이면 퇴근한다. 서울신문이 ‘주 52시간 근무제’에 맞춰 수습기자가 경찰서에서 잠을 자고 이른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근무하는 ‘하리꼬미’를 폐지해서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아요. 입사 전부터 단단히 각오한 일인데 갑자기 한 달 만에 출퇴근을 하게 됐어요. 경찰서에서 잠을 자지 않아도 돼 부모님의 걱정은 덜었지만 몸이 편해진 만큼 정신적으로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하리꼬미 마지막 세대인 고혜지 서울신문 수습기자의 말이다.


주 52시간 근무 시대가 열리면서 국내 언론계의 대표적 수습기자 교육인 하리꼬미가 사라진다. 기존 방식으로는 주당 52시간 근무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비좁은 경찰서 2진 기자실에 겨우 두세 시간 몸을 누이고 퇴근 없이 몇 개월을 보내는 수습기자들을 볼 수 없게 된다. 이영준 서울신문 시경캡은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언론사 하리꼬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라며 “수습의 출퇴근 개념이 생기는 것뿐 교육이나 보고·취재 체계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 다만 경찰서 중심의 사건사고보다 기획기사, 우리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에 더 집중하게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신입기자를 채용한 MBC도 근로시간 단축 등의 이유로 하리꼬미를 없앴다. 이호찬 MBC 시경캡은 “(방송사는 이달부터 68시간, 내년 7월부터 52시간인데) 이를 지키려면 하리꼬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수습교육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밤 보고를 없애고 내부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들어 신입기자가 첫 출근한 연합뉴스와 한국일보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었다. 연합뉴스는 하리꼬미 폐지와 함께 과거 4개월이던 사회부 배치를 2개월로 줄이고 부서 순환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일보는 수습기자 근무를 주·야간으로 나누고 하루 10시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경찰서 순회 교육을 할 방침이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존과 같은 하리꼬미는 어렵지만 그 제도 안에서도 배울 게 있다는 판단”이라며 “경찰서에서 잠을 자는 건 아니고 출근시간을 오전·오후로 나눠 밤에 경찰서를 도는 것까지는 경험하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상반기에 뽑은 신입이 이미 수습기간을 마쳤거나 하반기 채용 예정인 언론사도 주 52시간 근무제 맞춰 하리꼬미 폐지로 방향을 잡았다. 박수찬 조선일보 사건데스크는 “앞선 기수에서도 하리꼬미 기간을 대폭 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52시간에 따라 다음 수습부턴 해당 제도 폐지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준 세계일보 캡은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지만 주 52시간과 맞물려 법적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폐지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습교육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먼저 여러 방안을 시도한 곳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지난 수십 년간 하리꼬미는 기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기자로서 담금질하는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선배기자의 폭언 등 강압적인 방식 탓에 비인격적이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앞서 경향신문과 한겨레, KBS 등이 근로시간 단축과는 별개로 하리꼬미를 폐지한 배경이다.


한편에선 이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경찰서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극한 상황을 겪으며 기자로서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제도를 완전히 없애기보다 업무강도를 줄이고 수습기간에 한해 탄력근무제를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동아일보 관계자는 “3~4개월간 하던 걸 1개월로 줄여 탄력근무제를 적용하고 나머지 교육기간엔 주 4일만 근무해 52시간을 맞추는 안을 논의 중”이라며 “수면 부족, 주간 업무 집중도 하락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웅빈 국민일보 시경캡은 “언론사의 주 52시간제 도입은 하리꼬미 폐지뿐 아니라 기자가 경찰서를 돌며 취재하는 이른바 사쓰마와리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며 “수습기자가 들어오면 이 과정에서 배운다는 시선 자체를 변화할지 말지를 회사 차원에서 결정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달아·강아영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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