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참패, 평화 무드… 보수 언론의 딜레마

드루킹·스캔들 집중 보도에도 표심 영향 미미
보수 언론 '의제 설정력'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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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김주민 기자

▲제작=김주민 기자


보수몰락. 지난 13일 실시된 지방선거는 이 네 글자로 요약된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의 지도는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보수야당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언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보수가 심판받았다’고 분석하며 보수의 재편을 예견 내지는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심판받은 것이 과연 보수 정치만일까. 보수의 한 축이며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해왔던 보수언론은 심판론과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이번 선거에서 이들 보수언론의 역할과 선거 결과를 비교해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선거 초반 정국을 뒤흔들었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부터 보자. 일찌감치 ‘드루킹 게이트’로 사건을 명명한 조선일보는 지난달 18일 드루킹의 옥중 편지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TV조선은 ‘드루킹’, ‘경공모’, ‘경인선’ 등 관련 의혹 보도를 하루 최대 10건 이상씩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드루킹 사건은 특검으로 이어졌지만, 핵심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김경수 의원은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


선거 막판 최대 이슈로 떠올랐던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의 스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국지방선거 미디어감시연대가 지난 8~10일 언론보도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TV조선은 ‘이재명 스캔들’에 대해 3일간 전체 선거 방송 중 82%에 해당하는 128분을 방송했다. 채널A는 141분(61.3%)을 할애했다. 비슷한 시기 동아·조선·중앙일보의 이재명 스캔들 보도도 전체 선거 보도 대비 19~24%의 비율로 집중됐다. 이재명 후보는 언론의 네거티브 공세에도 여유 있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박동숙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 배경에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디지털 세대의 등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중앙일보가 한국정당학회와 공동 기획한 설문 보도를 보면 보수 진영 패배의 책임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에 있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보수정당이 그렇게 무너지게 만든 데에는 보수언론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진작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야 할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것이 보수언론이라는 것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자유한국당만이 아니라 보수일간지들의 현실 ‘몰인식’, ‘무인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 유권자 구성이 바뀌고 그들의 요구와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가 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고리타분한 인식의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실 인식 자체가 부정확하게 된 것”이라며 “올바른 보수의 이념과 가치를 훈수해줄 보수언론이 없었다는 것은 홍준표나 안철수에게도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보수를 지탱해온 한 축인 안보 이데올로기 역시 더 이상 통하기 힘들어졌다. 선거철 보수의 단골 메뉴였던 ‘북풍’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평화’로 대체되었다. 선거를 앞두고 한반도에 불어온 평화의 바람이 여당의 선거 압승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보수언론이 ‘드루킹’과 ‘이재명 스캔들’에 집중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한다. 채 교수는 “재미있는 것은 둘 다 이념 이슈가 아니었다는 거다. 남북관계가 미국과 공조해 평화 체제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이념 이슈가 더 이상 안 먹힌다는, 절치부심의 결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잇단 남북·북미정상회담 개최와 지방선거 결과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현재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주류 미디어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보수언론이 균열의 조짐마저 보이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동아·조선·중앙일보는 최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미묘한 노선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수지의 한 기자는 “내부적으로 특별히 논조나 뭔가가 바뀌었다기 보다는 시대가 달라졌으니까, 그런 시대를 반영하는 기사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보수언론의 역할 재정립도 불가피하다. 지난달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정례회의에서 나온 “경계와 의심이 좋은 역할도 하지만 때로는 어렵게 얻은 평화 모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보수의 건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등의 의견은 새겨들을만한 대목이다. 채영길 교수는 “비판적인 접근보다 건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동숙 교수는 “요즘 시민들이나 젊은 세대들은 정치를 이념적이거나 정당 기반이 아니라 ‘나의 삶’과 연결해서 받아들이는데, 언론은 여전히 정당 중심으로 대립과 갈등을 몰고 가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이슈별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정치 생태계의 변화를 언론들이 잘 매개해줘야 독자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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