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집 로비, 김 위원장이 눈 앞에, 본능적으로 수첩을…"

[기고] 김승욱 연합뉴스 기자 '4·27 남북정상회담 근접풀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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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보는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근접풀’ 펜기자로 활약한 김승욱 연합뉴스 기자의 취재기를 싣습니다.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청와대 기자단은 남북정상의 역사적 만남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취지에서 김 기자의 글을 기자협회보에 싣기로 결정했습니다.]

김승욱 연합뉴스 기자 (4·27 남북정상회담 근접풀).

▲김승욱 연합뉴스 기자 (4·27 남북정상회담 근접풀).

2018년 첫 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의 예고대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됐고 4월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이에 청와대 기자단은 정상회담 취재를 위한 풀(POOL)단 구성에 나섰다.


남북실무회담에서 결정된 우리 측 풀단의 규모는 54명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28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를 대표해 이들 54명에게 남북정상의 역사적 만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전할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풀 취재단도 크게 ‘외곽풀’과 ‘근접풀’로 나뉘었다. 외곽풀은 펜기자 15명, 사진기자 10명, 영상기자 14명, 외신기자 1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동선에 맞춰 판문점 내 주요 포인트에 배치됐다.


정상회담장인 ‘평화의집’ 내부를 취재할 근접풀은 펜기자 3명, 사진기자 4명, 영상기자 4명, 외신기자 3명으로 구성됐다. 펜 기자 중 외곽풀은 기존 청와대 풀 취재 순서대로 정해졌고, 근접풀 3명은 뉴스통신사·방송사·신문사에서 각 1명씩을 대표로 뽑았다.


풀단은 4월27일 오전 5시 춘추관을 출발해 오전 6시30분께 판문점에 도착했으며, 오전 7시40분께부터 두 정상의 첫 만남 장소인 군사분계선(MDL)과 의장대 사열 장소 등에 배치됐다.


필자의 담당구역은 평화의집 1층 로비와 사전환담장, 3층 만찬장이었다. 오전 9시41분이 되자 우리 측 청와대 전속 촬영팀과 북측 전속 촬영팀이 평화의집 1층 로비로 뛰어 들어왔고,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곧바로 따라 들어왔다. 김 제1부부장도 뛰어온 듯 다소 숨이 찬 모습이었다.


김 제1부부장은 평창동계올림픽 특사 자격으로 방한했을 때도 근접 취재한 바 있다. 반가운 마음에 김 제1부부장을 바라보던 중 낯익은 인물이 눈앞을 지나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었다.


전속 촬영팀을 제외하면 필자만 유일하게 경호라인 안쪽에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본능적으로 취재수첩을 펼쳐들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적어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두 정상이 나눈 대화 내용을 비롯해 미세한 표정 변화와 작은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였다.


김 위원장이 방명록 서명을 마치자 두 정상은 로비 정면에 걸린 북한산 그림 앞에 섰다. 필자가 있던 곳 바로 옆이었다. 김 위원장과 필자 사이의 거리는 불과 2~3m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은 그림을 가리키며 김 위원장에게 말을 건넸다. 한 걸음 더 다가가 문 대통령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의 북쪽에 있기도 하고, 산 이름이 북한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정상회담장에 북한산 그림을 건 까닭을 설명했고, 김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정상은 비공개 환담장으로 들어섰고 필자는 환담장 문 앞에서 돌아섰다. 순간 바로 뒤에 있던 북측 경호원과 부딪혔다. 품 안에 금속성 물체가 있음이 느껴졌다. 순간 ‘양측 경호원 모두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 절대 돌발행동은 하지 말라’던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이 떠올랐다. 노려보는 북측 경호원에게 사과하고 취재 내용을 전하러 평화의집 기자실로 내달렸다. 평화의집으로 돌아와 취재 내용을 일산 킨텍스에 설치된 메인프레스센터에 전하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청와대 기자단은 남북정상회담 풀단을 운영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풀 기자는 모든 취재 내용을 공유해야 하며 자사 기사를 작성할 수 없도록 했다. 정상회담 종료 후에도 개별 취재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자신이 풀 기자였음을 밝히거나 풀 취재 경험을 토대로 후기를 작성하는 것도 금했다.


단, 4·27 남북정상회담의 취재 기록을 남기는 취지에서 필자를 정해 기자협회보 한 곳에만 취재기를 싣기로 했다. 당시 판문점에 투입된 54명의 풀 기자는 기사에 이름 한 줄 들어가지 않는 ‘무명용사’였지만, 이들이 보고 듣고 발로 뛰어 취재한 팩트는 전 세계 언론이 쏟아낸 기사의 밑바탕이 됐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취재한 모든 언론인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으며 54명의 풀기자를 대신해 이 취재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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