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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수준, 선거의 수준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2018.06.14 11:13:48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좋은 제도나 문화를 가진 나라에 살면서 모국과 ‘비교하지 않기’가 어렵다. 핀란드 교육이나 복지, 정치 문화나 노동 환경을 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 든다. 이번엔 어느 세계적인 음악 축제와 6·13 지방선거를 비교하고 말았다. 핀란드 뽀리 재즈페스티벌(Pori Jazz Festival) 신임 CEO가 며칠 만에 해고된 일이다. 성소수자 차별발언 때문이었다. 한국 정치인들이 흔하게 내뱉는 그 혐오와 차별 발언.


기독민주당 소속 청년 정치인 아끼 루오쌀라(Aki Ruotsala)가 대표로 선임된 건 지난 1일. 며칠 뒤 지역신문 사타쿤난 깐사(Satakunnan Kansa)가 루오쌀라를 인터뷰하면서 그가 과거 옹호했던 반동성애 캠페인에 관해 질문했다. 2011년 기독교계 청년단체들이 진행한 앨래 아리스뚜(양보하지 말아요)는 교회를 통해 이성애자가 되었다는 양성애자 사연을 홍보 자료로 썼다. 적지 않은 시민은 캠페인이 성소수자 차별 행위라며 비난했고, 이에 반대해 청년 신자가 교회에서 대거 탈퇴하기도 했다. 핀란드 국교 복음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는 신자들의 종교세로 운영한다. 해당 캠페인을 진행한 단체들은 종교세로 구성된 지원금을 받고 있었다.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던 루오쌀라는 당시 동성애를 ‘일시적 문제’라고 말하며 캠페인을 옹호했다.  


7년이 지난 이번 인터뷰에서도 루오쌀라는 약물중독 치료 사례를 들어, 동성애자는 존재하지 않고 치료도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을 다시 드러냈다. 비판은 과거보다 거셌다. 여러 정당에서 루오쌀라를 꼬집었고, 재즈 피아니스트 이로 란딸라(Iiro Rantala)는 뽀리 축제를 보이콧한다고 밝혔다. 축제 위원회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무조건 철저하게 거부한다”는 공개 성명을 내고, 루오쌀라를 해고했다. 정치인의 공개적인 차별과 혐오를 핀란드 사회가 용납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축제라고 불리는 선거. 한국의 6·13 지방선거에선 어떨까. 무려 서울시장을 하겠다는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는 공개적으로 차별 발언을 던진다. 그는 정의당 김종민 후보의 ‘동반자관계 인증제’를 놓고 “동성애 인증제도”라고 폄훼하며 “동성애가 인정되면 에이즈와 출산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경기도의원과 안산시의원 선거에선 세월호 추모공원을 ‘납골당’이라 표현하는 야당 후보 구호가 걸렸다. <말이 칼이 될 때>를 펴낸 홍성수 교수 말을 빌리면, 모두 ‘폭력을 일으킬 수 있는 혐오표현’이다. 몇몇 유럽 국가 선거였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다.


여성을 향한 혐오와 차별도 위험 수준이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한 녹색당 신지예 후보 홍보물이 수십 건 뜯겨나갔다. 어느 유명 변호사는 “개시건방진. 나도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라며 훼손과 다름없는 말을 페이스북에 썼다. 더불어민주당 강원도지사 최문순 후보 캠프의 성 의식은 어떤가? 딸의 미모가 뛰어나니 ‘눈호강’하러 오라는 말(차마 원 표현을 쓰지 못할 정도다)로 유세를 홍보했다. 전국 광역단체장에 출마한 여당 후보 17명이 모두 남성이고, 구시군의장 선거에선 전체 남성 후보가 여성보다 스무 배 많다. 대표자 4000명을 뽑는 정치 축제인데,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모습이다.


여름을 맞아 취재차 핀란드에 오게 되었다는 언론사 부탁을 여럿 받는다. 먼 길 오시는 김에 핀란드에서 보고 갔으면 하는 것을 하나 꼽자면 역시 선거판이다. 차별과 혐오를 도구로 지지를 모으는 정치인과 질릴 만큼 남성만 가득한 후보자 명단, 유명세 빼면 뭘 이바지했나 싶은 언론인 출신 후보가 출마하는 풍경을 핀란드에서 지난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보지 못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쪼개고 짓이겨서라도 자리를 맡는 일이 선거라면 과연 유권자는 무엇을 위해 투표해야 할까. 6·13 지방선거에서도 또 정책은 보이지 않고 스캔들과 네거티브만 시끄럽다. 혐오와 차별을 전략으로 쓰는 일부 후보의 목적이 유권자의 정치 혐오는 아니길 바란다. 당선이든 낙선이든 선거는 구직현장이지만, 우리에겐 정치 수준을 확인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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