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로봇 기자' 시대

[글로벌 리포트 | 미국]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네이버가 올 하반기부터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뉴스 편집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모바일·PC 뉴스 첫 화면과 주요 뉴스 편집을 AI 뉴스 추천 시스템인 ‘에어스’에게 맡긴다고 했다. 사실상 공룡 언론사인 네이버의 이런 방침으로 한국에서 ‘AI 뉴스 편집’ 시대가 열리게 됐다.


미국 언론계에서는 AI가 단순한 뉴스 편집이 아니라 취재 기자를 대신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WP) 등 주요 언론사가 AI로 무장한 ‘로봇 기자’(Robot Reporter)를 속속 채용하고 있고, 로봇 기자가 ‘나와바리’를 넓혀가고 있다. 미국의 시사 매체 ‘더 위크’는 최근에 WP에 게재된 고등학교 풋볼 경기 기사 2건을 소개했다. 하나는 2016년 9월에 ‘인간 기자’가 쓴 것이고, 또 하나는 로봇 기자가 2017년 9월 작성한 동일한 풋볼 경기 소식이었다. 두 기사에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WP는 2016년 9월부터 2017년 9월 사이에 로봇 기자가 850건의 기사 작성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WP는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 하계 올림픽 당시에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탑재 로봇 기자인 헬리오그래프(Heliograf)를 이용해 300건 가량의 리포트를 했다. 헬리오그래프는 스포츠 담당 기자로 출발했으나 취재 범위를 확대해 미국의 연방 상·하원 의원 및 주지사 선거를 커버하면서 정치부 기자로 변신했다. 지난 2016년에 헬리오그래프가 작성한 약 500건의 기사 클릭 건수는 50만 건에 달했다고 WP가 밝혔다. 그렇다고 헬리오그래프가 스포츠 분야에서 손을 뗀 게 아니다. 스포츠 기사와 정치 기사를 동시에 쓰고 있다. 기사만 쓰는 것도 아니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주요 스포츠 경기 결과 등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미국의 AP 통신과 USA 투데이 등 다른 언론 매체도 속속 로봇 기자를 채용하고 있다. 미국의 언론 매체 ‘디지데이’(Digiday) 보도에 따르면 AP는 미국 주요 기업의 분기별 영업 실적 발표 기사를 로봇 기자에게 맡기고 있다. AP는 그 결과 이 분야 기사 작성에 투입했던 기자의 노동 시간을 20%가량 줄였다고 밝혔다. 영업 실적 숫자 오기 등 실수 건수가 거의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USA 투데이는 인터넷판 기사에 맞물려 있는 비디오 제작과 기사 읽어주기 기능을 로봇 기자에게 맡겼다. 구글은 영국의 한 언론사에 80만5000달러를 투자해서 매달 약 3만 건의 지역 뉴스를 생산하는 로봇 기자를 만들도록 했다.


로봇 기자의 등장으로 인간 기자는 실직 사태를 맞을 것인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로봇 기자의 생산성이 갈수록 올라가고, 취재 영역이 확대되고 있으며 속보성 측면에서 인간 기자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위크는 로봇 기자와 인간 기자가 상호 보완적인 공생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로봇 기자는 아직 단순한 사실 전달 뉴스 생산에 그치고 있다. 논평이나 의견, 가치 판단 등이 개입되는 기사는 여전히 인간 기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사실 로봇 기자가 특정 토픽이나 이슈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 한다. 로봇 기자는 기본적으로 인간 기자가 작성했던 기사 포맷을 그대로 카피해 인터넷망을 이용해 수집한 정보를 그 틀에 집어넣어 기사를 작성한다.


언론사는 로봇 기자 채용으로 뉴스 구독자를 늘려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로봇 기자가 기사만 쓰는 게 아니라 고객 맞춤형 보고서를 만들어 제공할 수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AI 작성 기사의 페이지뷰 증가를 넘어 이를 B2B 분야로 확대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고 디지데이가 보도했다.


이제 미국에서는 로봇 기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언론사와 그렇지 못하는 언론사 간에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로봇 기자가 디지털 디바이드로 이어지고, 이것이 언론사의 존폐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봇 기자가 아직은 인간 기자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역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더 위크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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