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밝히고 책임자 사과해야 진정한 과거사 정리"

검찰 과거사위, 정연주-PD수첩-장자연리스트 등 언론사-언론인 관계 사건 재조사할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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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받으러 법정에 가는 길이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지금도 서초역을 지날 때마다 아픈 기억이 자꾸 나요.”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지난해 7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배임 사건은 저한테 굉장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배임 사건이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정 전 사장을 해임시키는 계기가 된 사건을 말한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당시 사건에서 검찰권이 남용된 의혹이 있다고 판단하고, 지난 2일 대검 진상조사단에 사전조사를 권고했다. 현재 대검 진상조사단에서 사전조사 및 본조사를 진행 중인 과거 사건은 총 17건이며, 이 중 언론인 또는 언론사가 관계된 사건은 정 전 사장 배임 사건을 포함해 4건이다. 과거사위는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사사례의 재발방지 및 피해 회복을 위한 후속조치 등을 권고할 예정이다.


정 전 사장 배임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의 신호탄이었다. 정 전 사장이 국세청을 상대로 한 법인세 환급 소송에서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소를 취하함으로써 KBS에 1000억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는 게 검찰 기소의 요지였다. 이를 근거로 감사원이 KBS 이사회에 사장 해임 의견을 전달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6일 만에 정 전 사장을 해임했다.


그러나 이후 4년간 진행된 재판에서 검찰은 단 한 번도 정 전 사장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 정 전 사장은 배임 혐의에 대해 2012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 소송에서도 최종 승소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최교일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 뒤 현재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있다.


MBC ‘PD수첩’ 사건(2008년) 역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논란을 빚은 대표적인 사건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의혹을 제기한 방송에 대해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이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검찰은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로 재판에 넘겼다. 결과는 역시 무죄.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이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에 비로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작가의 이메일을 공개하고, 제작진 6명 전원을 체포하는 등 무리하게 수사를 밀어붙여 ‘정치검사’라는 오명을 얻었다. 당시 ‘PD수첩’을 제작한 이춘근 MBC PD는 과거사위의 본조사 결정에 대해 “늦게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라면서도 “단순히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라 수사를 지시한 윗선 등 실체적인 진실을 드러내고 책임 소재를 밝혀 당사자들이 직접 사과해야 검찰과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실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사건(2010년)과 장자연 리스트 사건(2009년)도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총리실 불법사찰은 청와대가 KBS, MBC, YTN 등 방송사 인사에 개입한 정황 등 언론사까지 예외 없이 광범위한 사찰 대상이 되었음이 드러난 사건인데, 검찰은 꼬리자르기 식 수사로 매듭지었다.


미투 운동에 힘입어 사전조사 대상에 포함된 장자연 리스트는 여론의 관심이 가장 높은 사건이다. 최근 한겨레21은 검·경이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이 장 씨를 술자리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면밀히 조사하고도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서 제외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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