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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언론계는 안녕하신가요?

"피해자 편에 서달라...그 순간 방관하지 말아주길"

최승영 기자, 김달아 기자2018.02.08 09:56:22

신문사 저연차 여성 기자 A씨는 타사 남자 선배가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는 일을 겪었다. 출입처 술자리 중 잠시 둘만 남는 순간이 왔고, 얘기를 하며 웃던 선배가 갑자기 엉덩이를 손으로 쳤다. A씨는 “모르는 척 (아무 일) 없었던 척 했다”고 말했다. “선배는 출입처에서 유명한 시니어 기자였고, 난 어린 기자인데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타사에선 비슷한 일이 징계 없이 일단락됐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혼자 화를 삭이고 선배를 피해 다녔다. ‘저 사람은 옛날 사람이라 저런 행동이 자연스레 나온 거야’라며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렇게 정당화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나고 힘들어지니까. A씨는 “출입처나 회사에서 잘 하고 싶었다. 어렸고, 좋은 기사를 써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다.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니 피한 것”이라며 “이젠 변해야 할 때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결정을 응원하고 싶다. 더 많은 경험이 공론화 돼 문화나 제도가 나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직 여성 검사들의 폭로 후 ‘미투’, ‘미퍼스트’, ‘위드유’ 운동이 각 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화가 이를 계기로 다시금 조명 되는 분위기다. 언론계는 이와 무관한 ‘청정 지대’였을까. 다수 여성 기자들은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구경북여성단체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구경북여성단체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연합뉴스)


일간지 허리연차 B기자는 1년차 시절 출입처 공무원으로부터 불쾌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모 국장은 B기자에게 “나 혼자 방에 있을 때 취재와라”, “여기자가 취재오니 좋네” 같은 말을 했다. 취재 겸 회식자리에서 다리를 만지길래 항의했다가 “어색해지니 참으라”는 회사 선배 핀잔을 들은 일도 있다. 그는 “타사 선배가 열심히 하는 게 기특하다며 등을 쓰다듬고 귀를 만지는데 항의를 못한 적도 있다”며 “내 편이 없다는 동물적 감각이랄까. 항의하면 나만 ‘미친 X’되기 쉬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남성 중심 성폭력 문화는 우리 사회 전체를 아우른다. 기자사회 밖에서도 여성 기자들은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 고위직 주요 취재원은 중년 남성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직위 수준에 늘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기자라 해도 우리 사회의 ‘나이 많은 남성’과 ‘나이 어린 여성’ 간 권력관계에서 자유롭진 않다. 여기에 늘 새로운 정보를 얻어야만 하는 ‘을’의 입장에 놓이고, 이를 통해서만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은 문제제기를 어렵게 만든다.


언론계 자체가 특별히 성폭력 문화에 깨어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남녀 다수 기자들은 남성 선배 기자들로부터 일상 속에서 ‘문제적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 자체로 성폭력 소지가 있고, 본인 의사와 무관한 신체 접촉을 가능케 만드는 배경이다.


방송사 C기자는 “휴가를 간다고 하면, 남자친구랑 가냐고 묻는다. 술자리에 가면 여기자 자리는 지정해준다”고 했다. 일간지 D기자는 “화장이 그게 뭐냐고 한다. 외모품평을 한다”고 했다. 일간지 E기자는 “인턴에게 주말에 뭐했냐고 물어보더라. ‘군대 간 남친이 휴가 나와서 돌아다녔다’고 하니까 ‘1박2일?’이라고 묻더라”라고 했다. 인터넷매체 F기자는 “시상식에서 수상자에게 여자가 꽃을 갖다 주니까 한 간부가 ‘저래서 여자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가 사과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모 방송사에선 불과 10여년 전까지 술자리에 기상 캐스터를 부르는 일이 있었다. 룸살롱에서 술 먹은 걸 공공연히 자랑하는 일도 여전하다고 한다.


이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제도나 절차를 갖춘 언론사는 많다. 조직문화와 위계적인 정도에 따라 ‘이후’는 천차만별이다. 피해자는 떠나고 가해자는 남는 경우, 일정 기간 후 두 사람이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방 교육이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언론사 내 성폭력과 관련해 피해자 편을 든 적이 있는 G씨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더라. 이후 뭘 해도 유별난 애, 독립투사, 페미니스트 이런 걸로 비춰졌다”며 “믿었던 동료, 선배 모두가 돌아섰다. 가해자가 잘 지내니까 내가 틀린 게 됐다”고 말했다.


B기자는 “피해자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서적 서포트가 중요하다. 가만있는 남자들이 원망스러웠다. 남편에게 부탁했다. 그런 순간 방관하지 말고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해달라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여자 직원이나 여자 기자가 있을 때였다. 어느 조직이든 남녀 수 기계적 평등이 중요한 이유다. 실질적 평등은 이후 올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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