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취재하는 기자들…취재윤리 '집단 불감증'

언론사간 과도경쟁이 원인
준칙 제정도 필요하지만
기자·데스크 의지가 중요

  • 페이스북
  • 트위치

기자들의 취재윤리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함께 일했던 인턴기자를 일반시민으로 둔갑시키고, 대기업 홍보팀원을 해당 회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품평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등장시킨 일이 잇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일 MBC 뉴스데스크에선 개헌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하는 리포트(무술년 최대 화두 개헌…시민의 생각은?)를 내보냈다. 문제는 여기에 등장한 일반 시민은 취재기자가 함께 일했던 인턴기자와 지인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대형 사건·사고 현장에서 과도한 경쟁 탓에 취재윤리가 무너지는 것도 비난을 면키 힘들지만, 이런 사례는 기자들의 둔감해진 취재윤리 의식을 방증하는 대목이라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1일 개헌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하는 리포트에서 취재기자와 함께 일했던 인턴기자를 일반시민으로 소개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1일 개헌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하는 리포트에서 취재기자와 함께 일했던 인턴기자를 일반시민으로 소개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취재기자들이 현장 일선에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인 취재윤리에 둔감해진 이유는 언론사 간 과열경쟁과 촉박해진 마감시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뉴스룸 안의 취재윤리에 대한 ‘집단 불감증’도 이런 문제가 되풀이 되는 이유다. 시청률이나 트래픽 등 단기성과에 매몰되면서 ‘베껴 쓰라’는 지시가 거리낌 없이 오가는 게 뉴스룸 내부의 현실이다.


더구나 신문과 달리 영상 확보가 관건인 방송 특성상 이런 유혹은 더욱 뿌리치기 힘들다.
정황은 확실하지만 섭외가 힘든 경우 취재 기자들은 이런 선택을 놓고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작년 5월 황금연휴 기간임에도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가정의 육아부담이 크다는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누가 봐도 육아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카메라 앞에 선뜻 나설 만한 ‘인터뷰이’를 찾기란 말처럼 쉽지 않아서다.


A언론사 기자는 “신문과 달리 방송은 시부모 등 주변인들이 다 보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지 않으려 한다”며 “취재윤리를 말하기 전 기약 없는 섭외를 해야 하는데 데드라인이 있다 보니 지인이나 홍보팀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동일 취재원의 인터뷰를 쪼개 쓰는 것 역시 방송 기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B방송사 기자는 “기사의 ‘야마’를 채우기 위해 한명을 인터뷰한 뒤 음성변조 등을 통해 2명에게 인터뷰를 한 것처럼 늘리는 경우가 있다”며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이런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몰래 카메라’ 역시 여전히 과도한 취재 욕심 탓에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국민의 알권리 등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남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주의만 기울이면 쉽게 피할 수 있는 논란이 커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실제로 JTBC가 지난해 7월2일 남자 화장실 논란(‘볼일 뒤 30초 손 씻기, 현실은?…무더위 속 위생주의보)의 경우 ‘몰카’에다 2015년에 촬영한 영상을 그대로 보도한 문제가 불거졌다. 화면에 ‘자료’라는 표시만 했어도 논란이 덜 했겠지만 그런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사 내부에선 사소한 실수처럼 치부할 수 있지만 취재윤리 등을 위반한 사례가 누적될수록 신뢰 하락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는 점이다. 반면 신뢰 회복을 위해 곱절 이상의 노력을 해도 원상회복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윤리규범이나 취재준칙 제정 등도 중요하지만 취재기자를 비롯해 담당 데스크, 부장 등의 의지가 없으면 엇박자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게 언론계의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JTBC, MBC, SBS 등 일부 방송사가 인기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인 종현의 유서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사례가 쌓일수록 취재윤리에 좀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장에서 취재윤리가 무시돼 왔던 것은 언론사 간 과도경쟁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에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취재윤리는 언론계에서 퀄리티 저널리즘을 가지고 경쟁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폭넓게 뿌리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김창남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