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하던 5·18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리다

제327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부문 / 광주일보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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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김용희 기자

▲광주일보 김용희 기자

지난달 초 5·18과 관련해 귀가 솔깃한 제보를 받았다.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의 암매장과 전일빌딩 헬기 기총소사에 관한 내용을 알고 있는 당시 계엄군 지휘관이 전북 진안군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헬기 사격·전투기 출격 의혹을 조사하는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고 5·18 기념재단이 행불자 암매장 발굴조사에 들어간 상황에서 해당 지휘관은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확보하고 조심스레 통화를 시도했다.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 의중을 묻자 그는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사절했다. 다시 한 번 설득해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받은 전일빌딩에 있었던 그 언론사의 기자”라고 말하자 “시간이 나면 얼굴이나 한 번 봅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곧바로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간 끝에 만난 그는 막 농사일을 마치고 온 듯 소탈한 복장에 인심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을 1980년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4지역대장이라고 밝힌 신순용 전 소령은 “그동안 광주시민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살았냐”며 “그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을회관에서 두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들었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신 전 소령은 자신이 부대원들과 함께 당시 시위대를 사살하고 직접 암매장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신 전 소령은 5·18기념재단이 발굴 조사를 하고 있는 옛 광주교도소 부지를 방문해 자신이 목격한 지점을 지목했다. 5·18기념재단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곧 발굴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70세가 가까운 나이에 37년 전 일을 또렷이 떠올리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그가 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광주시민의 따뜻함이었다. 광주시민들은 하루종일 배를 곯은 그와 부대원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나눠 줬고 “오늘 저녁은 시위가 격렬해질 테니 조심하라”고 일러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광주시민은 37년 전 그날의 과오를 떳떳이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신 전 소령에게 따뜻한 시선과 감사의 마음을 보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신 소령 같은 용기 있는 인사들의 양심고백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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