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 빈센트', 95분짜리 그림을 만나다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빛이라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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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이라 KBS 기자

▲김빛이라 KBS 기자

지독한 편도선염으로 초겨울 몇 주를 꼼짝 못하고 지냈다. 누군가 온 몸을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내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의 통증이 찾아왔다. 전염성은 없다지만 선약도 모두 취소한 채 집안에 박혀있으니 좀 낫는 듯 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지금도 콜록거리고 있는 건 순전히 이 영화 때문이라고 하겠다.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가 극장에서 내릴까 전전긍긍하다가 기어이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고백하건데 나는 그림을 잘 모른다. 영화를 보는 데에는 아낌없이 시간을 쓰고, 어떤 영화든 일단 보고 나서 자유롭게 감상평을 나누는 것을 그렇게 즐거워하면서, 이상하게도 그림만큼은 늘 예외였다. 좋다고 소문난 전시회를 관람해도 ‘예쁘다’, ‘멋지다’ 이상의 표현법을 쉬이 찾기가 어려웠다. 작품을 창작해낸 화가의 삶을 논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즐거움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내겐 늘 너무 먼 분야였다.


수 년 전 네덜란드 여행에서 ‘반 고흐 미술관’을 들렀을 때도 그랬다. 그림들이 빼곡한 공간에 놓여 있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숙제를 빨리 끝내려 안절부절 못하는 아이같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지만, 난 그저 관람객들 사이를 비집고 걷다 기념품샵에서 프린트 그림 하나를 산 기억이 전부다.


그러던 내게 ‘그림 그리는 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건 미술관이 아닌 극장이다. 이 독특한 영화는 러닝타임 95분 전체가 고흐 특유의 물결치는 붓터치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에서 온 화가 107명이 영화에 쓰일 6만 여점의 유화를 그렸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고흐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붓으로만 완성된 게 아니었다. 실제 배우들이 그린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하고 나면, 아티스트들이 붓터치를 더했다. 감독은 마치 나같은 이들의 머릿속을 읽은 것 같았다. 그의 예술 세계를 영화로 설명하려 드는 게 아니라, 상상력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빠져들게 했다.


고흐를 주인공으로 한 이 ‘미스터리 스릴러’는 추리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평가한다면 조금 헐겁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고흐가 죽고 일 년 뒤, 미처 보내지 못한 편지를 전해주려던 집배원의 아들이 그의 일생을 되짚어나가는 방식이다. 친절했던 하숙생, 미치광이, 천재 아저씨, 생전의 빈센트를 떠올리는 주변 인물의 이야기는 서로 모두 다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고흐에 대해 아무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점이 외려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공부를 해보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을 위해 무려 10년의 세월을 보낸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이 의도했던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외로웠지만 이제는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한 예술가를 가장 잘 조명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을 것이고, 한번쯤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면 누구든 예술혼에 매료될 것이라는 확신을 했으리라.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영화학교에서 연출을 배운 그가 처음 ‘러빙 빈센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온라인에 아이디어를 공개하자 전 세계에서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려는 화가들이 몰려든 건 그야말로 영화같은 이야기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예술가들이 혼을 담아 만들어낸 95분짜리 그림을 보며 나는 내 삶에서 가장 길고도 설레는 감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건 예술가의 삶을 탐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아서다.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만남도, 깊숙이 자리 잡았던 편견도 결국 본질을 전달하려는 열정을 이기기는 어렵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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